그리운 엄마! 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소풍 가신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절절히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엄마,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않고 아빠랑 잘 계시지요."
엄마를 아버지 산소 옆에 묻고 돌아서는데 외삼촌이 그러시데요. "누나 고생 지독시리 하고 갔다"고 한 마디 하네요. 우리 5남매는 눈물로 엄마를 보내드리느라 한 마디 말도 못 했어요.
엄마 유품을 정리하면서 엄마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원래 글을 잘 쓰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엄마가 일기를 쓴다고는 생각지도 못 했어요.
엄마는 부유한 집에서 자라 가난한 집 막내며느리로 시집와 시부모님에 청상과부가 된 손 위 두 동서까지 참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지요. 농사 일을 정리하고 대구에 와 큰엄마 손에 이끌려 들어간 보험회사 모집인 시험에 100점을 받으셨죠. 그때 소장님이 엄마를 붙잡은 기억이 나네요. 시골 아낙네인 엄마는 겁도 없이 보험일을 하게 되었지요. 소장님 덕분에 엄마는 자기개발을 하기 시작해, 도시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아버지는 저희 5남매를 엄마에게 맡기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나이가 많아 보험일을 그만두시고도 소일거리를 찾으시던 엄마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자식들이 쉬라고 해도 해 준게 없다며 일을 찾아 하셨던 어머니. 우리 딸 한문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하니 문제집을 달라고 하더니 한 번에 2급 자격증을 취득해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요. 또 75세나이에 한문 1급을 두 세 번 도전 만에 합격하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어요. 엄마는 한문1급 자격증 때문에 많은 분에게 부러움을 받았고, 그로인해 어린이집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노인일자리까지 하시는 걸 보고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취미활동으로 일어도 배우고, 서예도 쓰면서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며 살았던 엄마가, 어느날 둘째 외삼촌이 의료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셨던 그 후로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해 안타까웠어요.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 충격으로 정신줄을 놓았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내가 퇴직하기 전 엄마 모시고 여동생과 여행을 갔잖아요.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엄마의 표정은 굳어 있어 슬펐어요. 구경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불안증세가 나타나고 마구 화를 내신 기억도 나네요. 결국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뇌종양이라는 청천병력같은 소리를 들었어요. 치매 증상이 생기고 마비가 온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해야 된다기에 수술 날짜를 잡고 다시 검사를 하니 폐에도 종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술까지 포기하고 엄마를 보낼 준비를 했지요.
우리 엄마는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어요. 어릴적 시골에 살 때도 동네 경조사에 축문과 제문은 엄마 몫이였지요. 못 하는게 없는 엄마였는데,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성인병도 없었는데 우리 엄마가 하필이면 뇌종양일까?
그렇게 병마와 싸우다가 10개월 만에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나라로 떠나셨죠. 장례식날까지 햇볕이 쨍쨍 했는데 그 다음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삼우날 비옷까지 준비해 갔는데,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지요. 그 다음날부터 계속 비가 내려 산소가 무너질까 걱정을 했어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엄마의 부재는 갈 수록 커져만 갑니다.

엄마! 삼년 전 추석 때 우리아들 면회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더니 두 말 안하고 따라 나섰지요. 그때가 엄마와 우리가족이 함께 간 마지막 여행이 되었네요. 기념사진 잘 찍어 두었어요. 우리 딸 둘이 한꺼번에 공무원과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 저보다 더 기뻐 하셨지요.
좋은 일 궂은일 생겨도 더이상 전화할 곳이 없네요.
엄마가 암 선고를 받고 남편이랑 셋이 동해안으로 1박2일 여행을 갔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쌍무지개를 그때 처음 보며 좋은 일이 생긴다고 좋아했지요.
엄마는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바다는 처음 가보셨죠. 소녀처럼 순수하고 꽃도 좋아하고 관광지에 오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시는 분인데 '좋다'란 말만 하시고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셨지요.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좀 더 일찍 모시고 올 것을 가슴 치며 한탄을 했지만 시간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인천, 부산에서 몇 년을 근무 했지만 엄마 모시고 갈 생각은 왜 안 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 와요.

동생들이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하네요. 엄마의 머리만큼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컴퓨터를 잘해 블로그 기자 활동을 하며 동분서주 하며 바쁘게 살아가느라 나랑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볼멘 소리를 하네요.
엄마 며칠 후 산소에 벌초하러 갈꺼에요. 봄에 두 번이나 동생들과 산소에 잔디가 잘 자라도록 풀 뽑으러 갔지요. 장마에 풀이 많이 자랐겠지요.
엄마! 문득문득 엄마의 부재가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엄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엄마(이순름)의 딸(배현숙) 올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