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앞에서 머리 들고 밭을 갈고 / 牛前仰而犁(우전앙이리)
까마귀는 그 뒤에서 곡식을 쪼아 먹네 / 鴉後俯而拾(아후부이습)
소가 까마귀를 위해 밭갈이를 하랴마는 / 牛豈爲鴉耕(우기위아경)
까마귀는 소 덕분에 곡식을 먹는다네 / 鴉因牛得粒(아인우득립)
농부는 소여물을 항상 배고프게 주니 / 農夫呞牛長苦飢(농부시우장고기)
실컷 먹고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만도 못해 / 不如鴉群飽食東西飛(불여아군포식동서비)
소가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쟁기로 밭을 갈고 있다. 나름대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데도 주인은 난데없는 채찍질을 사정없이 등짝에다 휘갈긴다. 깜짝 놀란 소가 젖먹은 힘을 다해 죽을둥살둥 용을 쓴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여물통을 보면, 노동의 대가와는 거리가 멀다. 산해진미(山海珍味)나 진수성찬(珍羞盛饌)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한 적도 없지만, 실컷 먹여줄 줄 알았는데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다. 참 허탈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굶어죽기 때문에, 소는 오늘도 할 수 없이 밭에 나가 쟁기질을 한다.
쟁기질을 하다 보면 땅이 뒤집히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곡식 알갱이가 튀어나온다. 까마귀 떼들이 날아들어 고개를 숙이고 곡식 알갱이를 쪼아 먹는다. 소의 노동 덕분에 아무런 땀도 흘리지 않고 알갱이를 냠냠 쪼아먹다가, 배가 부르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마음껏 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죽도록 고생한 소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까마귀보다도 훨씬 못하다. 아니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 소는 그만 도분이 난다.
이것이 소와 까마귀 이야기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소 같은 사람들과 까마귀 같은 사람들 이야기다. 세상에는 소처럼 일을 하고도 배고파 죽겠다며 흑흑 흐느끼는 사람도 있고, 까마귀처럼 놀기만 하고도 배불러 죽겠다며 배를 툭툭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까마귀들은 그래도 소가 먹을 것을 가로채진 않지만, 까마귀 같은 사람들은 소 같은 사람들이 먹어야 할 것을 탈취해서 자기가 먹어치운다. 울화통이 터지는 사람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기는 연유다. 이런 시를 쓴 것을 보면 사신행(査愼行·1650~1727)이 살았던 청(淸)나라 초에도 사회모순이 아주 심각했던 모양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도 탱자탱자 놀면서 '눈먼 돈'을 찾아다니는 까마귀 떼들이 대단히 많다. 당연히 소에게 지급해야 할 코로나 선별지원금마저도 까마귀 떼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냅다 가로챌까 걱정이다. 그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청나라 때 지어진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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