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영박물관 엘긴 마블스
런던 대영박물관은 언제 가도 푸근하다.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입장료가 없다는 점도 한몫 거든다. 1층 왼쪽 그리스 유물 전시관에는 B.C. 5세기 그리스 조각들이 유혹의 눈인사를 건넨다. 세잔이 밑돌을 깔고 피카소가 몸돌을 올린 입체파 추상미술이 나오기 전 인류사 구상미술의 결정판으로 칭송되는 유물들이다.
사물의 모사를 넘어 기호학적 관점에서 이상적 아름다움의 재현(Representation)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조각은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엘긴의 대리석들'이라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풀린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숫처녀의 집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2천500여 성상(星霜)을 버틴 역사의 무게에서 숙연함이 배어난다. 파르테논의 역사는 B.C. 490년 마라톤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라톤의 기원이 된 전투다. 당대 최대 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는 감사기념 신전 공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B.C. 480년 재침한 페르시아가 아직 상량식도 치르지 못한 신전을 파괴해 버린다.
B.C. 448년 페르시아와 칼리아스 화약으로 평화를 되찾은 아테네는 이듬해 재건에 나서 B.C. 432년 완공시킨다. 이 파르테논 신전의 페디먼트(Pediment·박공)와 그 아래 프리즈(Friez)를 수놓던 조각이 엘긴 마블스다. 그리스 최고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신의 솜씨로 빚은 대작, 마그눔 오푸스다. 이것이 왜 대영박물관에? 1801년 35세의 영국 외교관이자 문화재 약탈꾼인 엘긴 백작이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 정부를 구워삶아 마구잡이로 뜯어갔다.
오죽하면 같은 나라 낭만파 시인이자 1824년 그리스의 대터키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죽은 바이런이 야만적 반달리즘으로 비난했을까. 파르테논의 뜻이 의외다. 파르테노스(숫처녀)+온(장소), '동정녀의 집'이니 말이다. 아테나는 '아테나 파르테노스'(숫처녀 아테나)로 불린다. 순결파 아테나를 기린 거다.

◆아테나의 로마 버전 미네르바와 부엉이
아테나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 용어, 라틴어로 미네르바다. 미네르바의 은유(metaphor)는 3가지다. 먼저 전쟁. 서양 박물관에 남은 미네르바 조각은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든 모습이다. 둘째 민주주의. 트로이 전쟁 아카이아(그리스) 연합군 측 장수인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최고의 용장 아킬레스의 창과 방패를 놓고 다투는 장면을 B.C. 6~B.C. 5세기 그리스 도자기에서 종종 마주한다.
아킬레스가 트로이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죽은 뒤, 아킬레스 시신을 수습해 온 두 사람이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에피소드다. 이때 그리스 측 수호신 아테나(미네르바)가 병사들 투표로 결정하라고 지시한다. 동서고금 가장 완벽한 형태의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의 효시로 꼽힌다. 미네르바의 3번째 은유는 지혜. 고대 이탈리아어에서 '메네소'는 '지혜로운'이다. 미네르바와 '지혜'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미네르바의 해 질 녘 산책길 동반자가 부엉이다. 서구문화에서 부엉이가 지혜를 상징하는 이유다.
◆헤겔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간 엘긴마블이 대영박물관에서 인기를 모으던 1820년 독일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 이렇게 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드는 해 질 녘에야 날갯짓한다." 철학 즉 학문, 역사란 예측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 속에 일이 전개된 뒤에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시행착오의 경험과 인과관계를 따진 뒤에 나오는 지혜를 하루가 지나고 날이 저물어 나는 야행성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빗댄 학문적 유추(類推·Analogy)다. 지혜의 상징,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한국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민주당 부엉이들…반지성주의
황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12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황제 탈영 의혹' 제보 대학원생 실명을 대며 '단독범'이라는 주홍글씨를 달았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범죄자로 모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대정부 질문 제한시간 13분을 질문 없이 추 장관 입장만 대변하다 내려와 국회의장의 충고를 들었다.
김종민, 황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다 해체했다는 '부엉이 모임' 멤버 즉 부엉이다. 진중권은 13일 '부엉이 모임'을 '친문 하나회'로 전두환 패거리에 빗대며 "이분들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더니, 그걸로 국민을 찔러댄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세종 때 황희 정승과 황희 의원,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민주당 부엉이는 이름만 같은 상사(相似)일 뿐 긍정적 의미의 유추(類推) 관계를 낳지 못한다.
이성과 지혜는 간곳없고, 내 편 지키기의 감성만 이글거린다. 미국 호프스태터의 1963년 작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떠오른다.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여론을 왜곡해 국민을 우민화하고, 반대파를 억압하며 전체주의를 자행하는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의 검은 그림자가 촛불을 덮으며 금수강산에 짙게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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