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전문가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2년 전에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과의사 입장에서 무척 아쉬운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상수도불소화사업(수불사업)이 중단된 것이다. '수불사업'이란 치아우식(충치) 예방을 위하여 수돗물의 불소농도를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는 사업을 말한다. 즉 우리가 마시는 수돗물에 적정 농도의 불소를 첨가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치아우식 예방효과를 가져다 주는 사업이다.

불소는 지각에 존재하는 원소 중에 17번째로 많으며 암석과 토양에 불화물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음용수에 1ppm 정도의 불소가 들어 있어도 치아우식 예방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에서는 1945년부터 수불사업이 시작되어 2014년 현재 수돗물을 공급 받는 인구 중 74%인 2억1천만명 이상이 혜택을 받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수불사업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금은 52개국에서 인위적으로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거나 불소가 함유된 천연수를 수돗물로 공급하고 있다.

또한 2000년에 개최된 세계보건기구 제 53차 총회에서 채택된 '비전염성질환의 예방과 관리에 대한 결의안'에서 '지역사회 수돗물불소농도조정은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서 충치 예방에 효과적이다. 수돗물이 공급되는 지역의 모든 주민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수돗물불소농도조정으로 혜택을 받는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수불사업의 공익성과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81년도에 일부 지방에서 수불사업이 처음 시작되어 2002년도에는 32개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일부 인사들에 의해서 수불사업의 전신건강 유해론이 제기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이와 관련된 비과학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이 보도되면서 몇 군데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수불사업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한구강보건협회'를 비롯하여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나서서 수불사업의 안전성과 필요성을 주장하였으나 이러한 전문가 집단의 의견은 일부 단체와 인사들의 선동적 주장에 묻혀버렸으며, 결국 우리나라의 수불사업은 2018년에 완전히 좌초되고 말았다.

'수불사업으로 충치가 줄어들면 치과의사에게 손해가 될 텐데, 치과의사들이 왜 수불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겠는가? 거기에는 그들의 음모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문가의 의견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 당하고 얼치기 선동꾼들의 요설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은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져서 이제는 옳고 그른 것의 판단기준도 모호해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전문가 집단도 그 동안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부분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의료인은 의료인에게 주어진 진료권이라는 배타적 권리가 국민에 대한 의료인의 신뢰와 성실을 전제로 부여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의 이익보다는 언제나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의료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실천해나갈 때 우리 사회에서 의료인들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지고 의료인들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생각한다. 전문가의 의견이 존종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최재갑 경북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