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당신도 정권의 적(敵)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나치를 대변한 독일의 헌법·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은 적(敵)과 동지(同志)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덕적인 것은 선악(善惡), 미학적인 것은 미추(美醜)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것'은 적과 동지의 구분에서 출발한다고 갈파(喝破)했다.

문재인 정권 3년 반을 집약(集約)하면 적과 동지로 나눠 국민을 갈라치기한 시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정권은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적을 지목하거나 심지어 만들기까지 해 위기를 모면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비판 세력을 적으로 몰아 증오(憎惡)에 찬 공격을 가하고, 정권 잘못을 덮는 데 탁월하다. 이 수법으로 지지층 결집 등 재미를 많이 본 것은 물론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휴가 미(未)복귀 의혹'을 공익 제보한 당직 사병 실명을 무단 공개하고, '단독범' 운운 등 범죄자로 규정했다.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인사학살'한 추 장관을 비호하고 싶은 심정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국민을 범인 취급하면서 이름까지 공개한 것은 위험수위를 한참 넘었다. 여당 의원이 당직 사병을 적으로 삼자 친문 세력은 온라인 테러에 나섰다. 정권이 국민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국민을 공격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여당 원내대표까지 지낸 한 의원은 추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을 제기한 동료 의원을 면전에 두고 "쿠데타 세력"의 "정치 공작"이라고 공격했다. 다른 한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정치 군인, 정치 검찰, 박 전 대통령 추종 정당과 태극기 부대가 만들어낸 정치공작 합작품"이라고 했다. 합리적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수법을 써먹고 있다.

코로나 재확산은 소모임 금지 해제 등 정부의 방역 잘못이 크다. 그런데도 정권은 광화문 집회, 전광훈 목사와 특정 교회에 책임을 돌리고 공격했다. 대통령은 "현행범 체포" "구속영장 청구"까지 들먹였다. 코로나 감염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인 이유를 정권은 전혀 성찰(省察) 않는다. 적을 만들어 코로나 재확산 책임을 전가(轉嫁)하고 싶은 저의(底意)만 엿보일 뿐이다.

정권은 의사 집단휴진 사태 때엔 의사들에게 화살을 쏘고, 부동산 폭등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주택자 탓으로 돌렸다. 윤미향 사태와 한·일 경제 전쟁에선 토착왜구란 비수(匕首)를 꺼내 들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은 정권의 단골 공격 대상이다. 어느 정부보다 언론 탓도 많이 한다. 정권에 의해 적이 된 이들을 리스트(list)로 만들어도 될 정도다.

적과 동지를 갈라치기해 나라를 전쟁터로 만든 정권의 행태는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추 장관 아들 의혹 제기에 공감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권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4·15 총선이 끝난 지 5개월이 넘도록 재검표를 않는 대법원을 비판하고, 세금 퍼주기로 국가채무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정부를 질타(叱咤)해도 정권의 적이 될 수 있다. 정권을 향해 독재라고 규탄하거나 정권이 목을 매는 20년 집권을 반대하면 어김없이 적이 될 판이다. 국민 누구나 정권의 적이 되기 십상(十常)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정권은 친일을 이유로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도 바꿀 심산(心算)인 것 같다. 차제에 애국가 가사도 바꾸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적들이 나오고, 그 적들의 피로 땅을 적시자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가사를 방불케 하는 애국가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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