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현장 목소리 빠진 '언어재활' 급여화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 해결한다지만…정작 장애아동 부모들은 달갑지 않아
기존 언어재활제공기관 줄어들고…서비스 질 떨어진다는 우려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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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사회부 기자
이수현 사회부 기자

뇌병변 1급의 중증장애아 김건우(13) 군은 전국 병원을 떠돌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2살 때 장애를 얻은 뒤 11년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권 후보 시절, 김 군을 앞에 두고 약속했다. 재활을 받으러 전국을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김 군처럼 병원을 옮겨다니는 아이들을 '어린이 재활 난민'이라고 부른다. 재활을 받을 어린이병원이 국내에 충분치 않아 이런 아이들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운영 중인 민간 어린이재활병원은 1곳. 일본이 200곳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건복지부가 다음 달 추진 예정인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지정·운영 시범사업'은 '어린이 재활 난민'을 막기 위한 사업이다. 장애아동이 가까운 곳에서 전문 재활 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 사업의 취지다. 강원, 경북, 경남, 충북, 충남, 전북, 전남, 제주지역이 대상이다.


하지만 정작 장애아동 부모들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가 더 커질까 하는 우려다.


이 사업이 추진되면 그동안 비급여 항목이었던 인지언어기능검사와 1대1 언어재활 등에 건강보험이 2년간 시범 적용된다. 시범 적용 뒤에는 이 항목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재검토된다. 문제는 향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재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장애아동 부모들이 '접근성 부족'을 걱정하는 이유다. 기존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사용할 때보다 언어재활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까운 언어재활제공기관에서 언어재활을 받지 못하고 대학병원까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곧잘 사용하고 있던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가 사라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 사업 내용과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가 중복되는 탓이다. 이미 10여 년 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09년 정부는 재활치료 지원을 확대한다면서 장애아동 물리·작업치료를 바우처 혜택에서 제외했다. 치료 가능한 의료기관이 대도시에 몰렸던 탓에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지역 아동들도 있었다.


언어재활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수의 의료기관에서 언어재활을 진행하게 되면 대형병원 시스템에 따라 상담 시간이 줄고 대기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엇박자는 현장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다. 당장 부모들은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 등 기존에 장애아동이 이용해 온 언어재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꿀 우려가 있어 반발이 큰 것이다. 굴러들어온 돌이 잘 자리 잡힌 돌을 빼낸다는 것이다.


올해 기준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를 이용하는 장애아동은 대구가 1만5천969명, 경북이 7천859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 바우처를 이용해 평균 주 2회, 1회당 50분씩 언어재활 서비스를 받는다. 현재 대구경북에서 바우처를 이용할 수 있는 언어재활제공기관 또한 각각 167곳, 144곳에 달한다. 하지만 향후 건강보험이 적용돼 지정된 의료기관에서만 언어재활 서비스를 받게 되면 이후에는 각각 20여 곳, 10여 곳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


어린이 재활의료기관을 만들어 재활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취지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번 시범 사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책 당사자격인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시범 사업이 진행되는 2년 동안 '어린이 재활 난민'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아동 부모들의 우려를 덜 만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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