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이생집망’ 모는 정부 대책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이 참석해 열린 제7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 등이 참석해 열린 제7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두성 경제부 차장
최두성 경제부 차장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대책을 접하며 문득 내 집 마련의 과정을 떠올려 봤다.

부동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당시지만 전세 탈출, 즉 내 집 마련은 중대한 목표였고 그 방법은 돈을 모아 대출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내 집 마련에 애를 쓴 건 그저 이사하기가 싫어서였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집주인을 만나 전세금 인상 압박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직장 이동 등으로 이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과정은 귀찮았고 피곤했다.

그래서 묵혀 놨던 청약통장을 써 분양을 받았고, 모아 놓은 돈이 모자라 대출을 끌어 썼다. 어찌어찌 입주해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했으나 기쁨은 잠시였고 그 후 한동안 쌓인 대출금에 이자를 갚느라 먹는 것 줄이며 지내야 했다. 그 과정은 '○○은행 월세살이'나 다름없었다.

갭투자 등으로 재산을 많이 불린 이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는 재테크에 소홀했던 자신을 한탄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오롯이 내 집을 갖게 됐다는 목적을 이뤘으니 만족하며 살아왔다.

이런 나의 '내 집 마련기(記)'를 지금은 들려줄 수가 없다. 그 방법은 구시대 유물이 됐고, 자칫 하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 취급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방법이야 별반 다르지 않겠으나 이제는 이행하는 조건들이 쉽지 않아졌다. 집값이 너무 오른 탓이다. 지금의 집값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한 푼 두 푼 모아 살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정부가 "집값만큼은 잡겠다"고 나서 20차례가 넘는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30대 후반의 직장인 A씨. '부모 찬스권' 없는 흙수저인 그는 정부가 쏟아낸 정책이 되레 내 집 마련을 더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됐다며 한숨 짓는다.

그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웠던 이들 중 하나였다. 생애 첫 집은 새집(아파트)이고 싶었고 이왕이면 쾌적한 주거환경에 교통도 편하고 교육 환경도 좋았으면 했던 게 돌이켜보면 화근이 됐다. 그걸 충족시키기에는 모은 돈이 적었다. '지르기'를 망설이는 동안 집값은 올라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그가 다시금 기댄 건 집값 잡겠다는 정부의 말이었다. 그는 이것을 두 번째 후회 거리로 꼽는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출을 틀어막는 것이었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길도 막아버렸다. 현금 없이는 집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영끌'(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뜻의 신조어) 대열에도 합류하지 못한 그는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란 결론을 내렸다.

"집이 없으니 집값 내려갈까 집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 없고, 부동산 사이트 서핑 안 해도 되니 눈이 피곤할 일 없다. 정부로부터 투기꾼 취급받을 일도 없다"고 위안하며 "안분지족(安分知足) 삶 누리며 살겠다"던 그가 얼마 전 또 다른 고민을 토로했다.

새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시행으로 '전세살이'마저 위협받게 생겼다고.

새 임대차법은 계약갱신청구를 통해 세입자가 최대 4년은 큰 전셋값 인상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했으나, 그 후 또는 임대인의 직접 거주로 계약갱신청구가 거절당했을 때는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집값 올라 '이생집망'했는데, 새 임대차법으로 주위 전셋값마저 크게 올랐으니….

"부동산시장 과열 주범으로 지목된 다주택자들이 너도나도 집을 내놓고, 정부 대책이 약발 받아 집값이 내려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에게 들려줄 말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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