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 안상학(1962~ ) 作
구월이던가요
푸른 그늘을 걸어서 들어가는 길 누군가
팔상전 기와 중 유독 푸른빛 기와 하나 있다는데요
그 기와 찾으면 극락 간다고 하는데요
혼잣말처럼 흘리던 사람은 딴전이고요
정작 뒤에 가던 우매한 중생 하나
그 말을 날름 주워 들고서는
극락에 미련이 있는지 어쩌는지
팔상전 기와를 샅샅이 둘러보는데요
헛, 그, 참,
어디에도 푸른 기와는 없고 해서
우두커니 하늘만 올려다보는데요
문득 팔상전 꼭대기 위로 펼쳐진 궁륭의 하늘
그 푸른 하늘 한 장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아, 글쎄, 무릎을 치며 환호작약하더라니까요
허긴, 극락이 거기 있다는 소문은
벌써부터 파다한 세상이지만 말이지요
하늘 좋은 가을이 왔다. 조망 좋은 산 위에 올라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맑아지고 기분이 풀린다. 집착이며 노여움이며 그런 것들마저도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부럽다. 안상학 시인이 이 좋은 계절에 누군가와 어울려 법주(法住)의 푸른 그늘을 걸어 들어가 '하늘 기와' 를 발견했다니…….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눈도 없고 동행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 그런 행복은 두루두루 벗이며 이웃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터.
즐거움만 있는 곳 '극락'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안상학 시인을 두고 '돈오(頓悟)는 있되 점수(漸修)가 부족하다'는 최원식 선생의 말에 백번 동의하지만 점수는 무슨 점수, 시인에게 점수는 필요 없다. 돈오면 충분하다. 사실은 돈오가 오면 돈오마저 뿌리쳐야 하는 것이 시인이다.
기와란 흙을 뭉치고 으깨고 다지고 빚어낸 물건. 이 기와로 지붕을 인 팔상전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시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상징이며 비유며 그런 문학 용어들을 들먹이는 걸 도무지 마땅치 않아 하는 나이지만 안상학 시인의 이런 시를 대하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을 들먹이지 않을 수가 없다.
가을 절집은 또 얼마나 소슬하고 멋진가. '팔상전 위 그 푸른 기와 찾으면 극락에 간다'는 말 잊지 않겠다. 올가을엔 그 '푸른 궁륭의 하늘'을 자주자주 바라보겠다.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 유홍준: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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