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정글의 법칙’, 재난의 시대, 생존법으로 돌아오다

‘정글의 법칙 in 와일드 코리아’, 재난 생존을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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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정글의 법칙' 포스터. SBS 제공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던 SBS '정글의 법칙'이 돌아왔다. 대신 '정글의 법칙'이 선택한 건 국내의 오지에서 경험하는 '재난 생존'이다. 과연 이 선택은 향후 '정글의 법칙'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걸까.

◆재난 생존으로 돌아온 '정글의 법칙'

2011년부터 방영됐던 SBS '정글의 법칙'은 2020년 6월까지 꽤 오래도록 방영됐던 장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6월부터 방송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더 오래 휴지기를 이어갈 수는 없는 법. '정글의 법칙'은 새로운 대안으로서 해외가 아닌 국내를 선택했고, '재난 생존'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더했다.

박찬호-박세리, 허재-허훈, 이봉원-박미선 그리고 추성훈-청하가 각각의 팀(?)이 되어 모인 자리에서 프로그램은 갑자기 재난상황을 연출하고, 이들이 헬기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재난이 예고 없이 벌어지듯, 잘 차려입고 사전모임에 왔던 이들은 그 차림 그대로 배에 태워져 무인도로 보내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주어진 구명정과 생존키트를 이용해 함께 살아남는 일이 이들에게 미션으로 주어진다.

김병만은 사전에 '재난 생존'에 대한 교육을 일주일간 받고 이들 조난자(?)들과 합류했다. 그래서 그들이 생존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조언과 정보를 제공한다. 당장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바닷물이 아닌 민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내고, 그 옆자리를 파냄으로써 자연정화된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김병만의 조언이 가능한 건 그가 '정글의 법칙'을 찍으며 만났던 원주민들로부터 그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전 세계의 정글을 누비고, 그 오지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로부터 갖가지 생존법을 배운 데다, 이번 '재난 생존'을 위한 교육까지 마친 김병만은 사실상 생존전문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언제 어디서든 먹거리를 구해내고 그 곳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집을 지었던 그가 아닌가.

김병만은 양식을 하는 바다에서 많이 사용하던 대나무가 파도에 밀려들어와 해안가에 많다는 정보를 알려주고 그렇게 모은 대나무들로 잠을 잘 수 있는 간단한 집을 만든다. 또 낚시로는 물고기를 잡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 하에 줄과 그물 등을 이용한 어항을 만들어 바다에 던져 놓는다. 놀랍게도 그 어항으로 거대한 바닷장어가 잡히고 때 아닌 야식 파티가 벌어진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출연자들의 케미가 만들어내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스포츠스타지만 이토록 털털할 수 없는 오누이 케미를 보여주는 박찬호-박세리가 있다면, 정글판 '부부의 세계'를 연출하는 이봉원-박미선 부부가 있고, 요령 피우는 아버지와 고생하는 아들의 대비로 웃음을 주는 허재-허훈 부자가 있다. 여기에 비주얼 커플로 서 있기만 해도 화보가 되는 추성훈-청하가 더해졌다. 이들 케미가 주는 웃음은 이들의 짠한 생존기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해준다. '재난 생존'이라는 확실한 기획의도이자 명분이 세워졌고, 그 위에 예능으로서의 재미 또한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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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정글의 법칙' 방송화면 캡처

◆생존법 정보가 더해지자 생겨난 것들

물론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것이지만, 국내 오지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법칙'들은 지난 '정글의 법칙'이 보여줬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꽤 오래도록 방영되어온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시청층이 있는 '정글의 법칙'이지만 사실 이 프로그램은 초창기에 폭발했던 그 화제성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그것은 여러 가지 논란들이 터지면서 '정글의 법칙'이 상당한 방향 수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초창기 '정글의 법칙'이 내세웠던 건 병만족이 가족 같은 팀을 이뤄 보여주는 생존과 공존이었다. 베어 그릴스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이 혼자서 혹독한 자연과 싸워 생존해가는 과정을 담았다면, '정글의 법칙'은 한 사람은 부족해도 여럿이 함께 하면 해낼 수 있는 생존을 보여줬고 동시에 자연이나 원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한 공존을 모색했던 것.

하지만 이런 애초 기획의도는 리얼리티 논란으로 인해 더 이상 추구할 수 없게 됐다. 거기 등장하는 원주민들과의 체험이 사실상 관광 상품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생존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의미는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와일드 라이프'를 대리체험하고,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듯 정글을 즐기는 이야기들이 채워졌다. 하지만 이런 방향 전환도 '대왕조개' 논란 같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자연에서의 생존이 아니라, 마치 생존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정글의 법칙'은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고 했던가. 코로나19로 국내로 방향을 튼 '정글의 법칙'이 그 의미로서 내세운 '재난 생존' 같은 정보성은 이 프로그램이 다시 설 수 있는 좋은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는 물론이고,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화재와 홍수 같은 재난 상황 속에서 '생존법'에 대한 정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그러니 이제 전 세계를 돌며 생존전문가가 된 김병만이 여러 상황 속에서 '생존법'을 배우거나 알려주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와 재미를 더할 수 있게 해준다.

◆김병만이 생존가이드가 되길 기대하는 건

사실 베어 그릴스가 '인간과 자연의 대결'에서 보여준 건 '리얼리티'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은 특별한 생존 상황을 상정하고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일종의 가이드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은 그 확실한 '정보성' 때문에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정글의 법칙'이 초창기부터 해왔던 정글에서의 리얼한 생존기와 거기 더해진 예능적인 재미들만으로는 지금의 달라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떤 재미를 추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들어가 줘야 하는 건 정보들이다. 그 정보들이 있어 재미 또한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아이템에는 '헌터와 셰프'라는 부제가 붙었다. 김구라, 김강우, 이용진, 공승연이 출연하는 이 방송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인물은 여러 차례 SBS에서 다큐멘터리와 예능을 통해 소개되었던 자연주의 요리연구가 임지호다. 자연에서 나는 풀이나 식재료를 즉석에서 요리로 만들어내는 그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건, 그가 생존 환경 속에서도 먹거리를 어떻게 찾아내고 요리해 먹는가에 대한 남다른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글의 법칙'은 향후 어떤 방향성을 갖게 될까. 아직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프로그램을 초창기에 런칭했고 지금은 책임지는 위치에 서게 된 이지원 CP가 필자에게 전한 말을 참고해 보면 생존법이라는 정보성이 향후에도 중요한 기획요소가 될 거라는 걸 예감하게 한다. 그는 어촌에서 가장 뛰어난 생존전문가는 어부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런 전문가들을 통해서 배우는 생존법을 프로그램에 담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처음 '정글의 법칙'이 시작될 때만 해도 김병만에게 요구된 건 말 그대로 정글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꽤 오래도록 정글을 체험한 그에게 기대하게 되는 건 그가 생존가이드로서 특별한 정보들을 전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김병만의 새 길을 열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정글의 법칙'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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