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는다. 나는 아니야!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조금 억울해했다. 인간에 대해 증오와 복수심을 갖는 동물들에게 가닿지 않는 변명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당치 않은 일.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고 해도 그뿐이다. 그들의 육을 먹고 살고 있다. 약육강식?! 동물에게 얼마의 타협할 바늘구멍 하나 없는 무논리의 인간논리.
책을 다시 편다. 묘산문답을 읽는다. '읽었다'라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을 가져온 이유는 한두 번 읽은 것으로 감정을 추스려내기 어려워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 부채감 때문이다. 이 책은 <철저히 동물의 처지에서 인간을 고발하는 동물문학의 신기원>이라는 소개대로 인간에게 핍박받은 동물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생명과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고 탐구하여 이를 작품으로 해소해 온" 문상오 작가로 〈묘산문답〉에서도 인간 잔혹사를 고발하고 생명존중 문제제기를 위해 동물들을 앞에 내세운다. 고양이 '방울'은 주인의 손에 새끼를 잃었다. 함석지붕 아래에서 진돗개 '새복'과 수고양이 '삭'을 인연이 엮어준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늙은 쥐 황종을 만나고, 고라니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듣는 순간 다시금 인간에 대한 적의가 끓어오르게 된다. 방울은 늙은 쥐 황종에게 자신이 지켜줄 테니, 인간에게 분풀이라도 하자며 설득한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 인간에게 핍박받은 동물들이 가족으로 묶인다.
주인의 손에 개장수에 팔려갔다가 도망친 진돗개 새복, 어린 새끼들이 기름가마에 던져진 것을 본 고양이 방울, 인간의 총에 부모를 잃은 고라니 은돌 형제, 동물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늙은 쥐 황종과 형제들. 이들은 인간의 잔혹함에 치를 떨며 복수를 꿈꾼다. 그리하여 천문지리에 능한 구렁이 묘산을 찾아가 방울이 질문한다.
"인간은 짐승에게 그 어떤 만행을 저질러도 되고, 짐승은 그런 인간에게 잠자코 있어야만 한다? 그게 대지의 뜻이라면 자기모순 아닐는지요. 대지가 소산한 산물이 어리석을 순 있어도, 대지가 어리석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이때 묘산이 방울에게 내린 답은 '섭리'였다.
"대지의 뜻은 무얼 받은 만큼 되돌려 준다든지, 돌려준 만큼 무얼 기대한다든지 하는 그런 게 아니네. 섭리에 따라 굴러가는 거지. 거기 어디에도 작위해서 된 것, 될 것도 없다네. 인간이 짐승이 짐승에 대한 해악이 극한에 다다르면 그게 짐승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보복인 게야."
방울이 무리는 인간에게 보복을 하는 일이 자신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일이라는 것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누룩뱀 칠점이 묘산의 신물을 훔쳐내 "자신이 호신으로 있는 인간들을 돕자고" 동물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자, 동물들은 새복을 우두머리로 뽑아 누룩뱀을 응징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방울과 삭의 살인행동, 새복과 황종의 구조행동으로 방향이 갈린다.
다시 책을 덮는다. '브레멘의 음악대'가 떠올랐다. 묘산문답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간에게 따져 묻는 형식으로 고전문학 우화소설에 가깝다. 독자는 새끼를 잃은 방울에게 연민을 느껴 따라다니다가 새복과 황종의 덕과 지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평은 여기까지이다.
서미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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