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을 걷다, 먹다] 태평초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안동 고향묵집 태평초.
안동 고향묵집 태평초.

#1. 첫 번째 이야기 태평초

'태평성대'(太平聖代)는 역사상 단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마치 현실세계에선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이라는 '유토피아'처럼 만인이 편안하게 사는 태평성대는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도 이뤄질 수 없는 백일몽이다.

태평성대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진 그런 임금도, 그런 황제도, 그런 대통령도 없다.

전설과 신화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태평성대. 태평성대를 꿈꾸는 음식이 있다.

'태평초'다.

김치와 돼지고기 야채, 그리고 메밀묵을 넣어 끓이는 경상도식 찌개를 안동 영주 등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태평초'라 부른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설에는 영조가 당파싸움에 이력이 난 노론과 소론 등의 영수들을 한데 모아 당쟁을 멈추고 화해시키기 위해 '탕평채'를 내놓은 이후에 백성들 사이에서 태평성대를 기원하면서 먹기 시작한 '백성의 음식'이라는 의미를 담아냈다며 태평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세종의 아들, 금성대군이 둘째 형 세조(수양대군)가 일으킨 계유정난을 통해 왕권을 잃고 폐위된 단종(조카)의 복위운동을 하다가 유배된 곳이 순흥군(지금의 영주)이었다. 단종복위운동을 위해 함께 낙항햔 선비들이 금성대군과 함께 화전을 갈면서 단종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태평성대를 기원하면서 김치와 나물 그리고 흔한 묵과 돼지고기를 함께 넣어 가마솥에서 끓여내 함께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다. 김치찌개에 산골에서 주식으로 먹던 도토리묵이나 메밀묵을 넣은 것 뿐인데 '태평초'라는 성스러운 이름이 붙은 내력에는 설득력이 배가된다.

사병(私兵)을 기르면서 까지 왕위를 탈취하고 싶었던 수양대군에 비해 같은 세종의 아들이었던 '금성대군'은 아무래도 남들보다 도드라지게 심지가 곧았던 모양이다. 대쪽처럼 올곧기도 하지만 세상사에 타협하지 않는 외골수같이 정의로운,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세종 사후 왕권이 맏아들인 문종과 문종의 아들 단종으로 장자(長子)상속되는 유교적 전통이 굳어지는 듯 했지만 실상은 두 왕(王)의 재위기간이 지나치게 짧았던 것과 삼촌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의해 왕권이 쉽게 무너진 점을 보면, '신생국' 조선의 왕권기반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금성대군 신단은 순흥의 단종복위운동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신문 DB
금성대군 신단은 순흥의 단종복위운동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신문 DB

그때는 아직 조선선비 정신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성리학적 윤리관이 뿌리박히지 않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단종 복위운동에 나섰던 선비들이 조카에게 넘어간 왕위를 찬탈한 형의 패륜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금성대군과 의기투합한 것이 소위 '선비정신'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연유로 탄생한 '태평초'라면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일품(一品)의 맛이렷다.

당시 평생 농사일을 해보지 못한 선비들이 순흥 땅에 와서 화전을 일궜다는 전설은 아마도 소백산자락에서 화적노릇하던 화전민의 영웅담일 수도 있겠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어떤 '양반'이던가.

소낙비를 맞아도 군자는 대로행이라며 남의 집 처마 신세지는 것을 극구 마다하고 장대비같은 비를 묵묵히 맞지 않던가. 그들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명분과 체면이다. 반상(班常)을 철저하게 가리던 양반들이 화전을 갈고 '반상'(班上)구분 없이 개다리소반 독상이 아닌 툇마루에 걸터앉아 함께 밥을 먹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쨌든 '태평초'는 서민음식이었고 여럿 분별하지 않고 둘러앉아 먹는 '상놈' 혹은 평민의 문화였다.

한 때 그것은 '묵두루치기' 라고 불렸다. 향토음식으로 겨울에는 '묵'만한 것이 없었다. 동치미에 뜨거운 물에 데쳐 낸 듬성 썰어낸 묵채에 무채를 송송 넣고 장을 쳐서 슥슥 숟가락으로 비벼서 먹는 맛은 그야말로 엄동설한 한겨울 진미 중 으뜸이었다.

탁배기 한 두 되 정도는 집집마다 감춰 둔 '농주'였다. 그 때 태평초는 간단하게 끓여낼 수 있는 최고의 안주였다.

물론 조선시대에 서민들이 돼지고기를 제대로 먹었을 리가 없으니 태평초의 맛을 좌우하는 돼지고기는 조선시대에는 아마도 마을장정들이 종종 잡았을 멧돼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돼지고기의 신선도가 태평초의 국물 맛을 좌우한다. 기름기가 적당한 부위의 돼지고기를 자박자박 썰지 않고 듬성듬성 격식 없이 썰어 넣는 것이 태평초의 맛을 좌우하는 다른 포인트다. 예전에는 정육점(육소간)에서 파는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집집마다 경조사 등의 잔치를 벌일 때는 꼭 돼지를 잡았다. 그 때의 돼지고기의 식감을 떠올려보면 태평초의 돼지고기는 기계식으로 싹둑 썰어놓은 그것과는 식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임금의 요리'라는 탕평채는 사실 맛이 없다. 다이어트가 대세인 요즘, 그만한 요리가 없겠다. 각종 채소 채 썰어 메밀묵이나 도토리묵보다는 엄청 비싼 '청포묵'을 넣어 버무린 샐러드 아닌가.

JTBC 캡처
JTBC 캡처

탕평채를 내놓는 청와대의 식탁은 사실상 정쟁이 격화된 시대라는 것을 반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기 여야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밥 한 그릇 먹이면서 탕평채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조선 영조가 각 당파의 수장들을 모아 탕평채를 내놓은 연유를 직접 설명했다고 한다. 소위 당파싸움, 정쟁은 그 때 이후 단 하루도 멈춘 적이 없었고 대통령이 직접 그 당파, 문파의 수장이 되어있는 게 현실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음식의 맥은 역사와 함께 해야 이어진다. 소백산자락을 끼고 있는 순흥이나 안동이나 문화적 전통을 함께 한다. 가을추수를 마친 후 툇마루에 앉아 보글보글 끓는 태평초를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서울사람들이 이해할 수나 있을까.

안동에서 태평초를 현대적으로 잘 해석해서 솜씨 있게 끓여내는 식당은 단연코 #고향묵집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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