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틀란트반도 남쪽에 있는 슐레스비히 공국(公國)의 소유권을 놓고 덴마크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가 벌인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1864년)은 프로이센에서 최초로 문민(文民) 정치인이 통제권을 행사한 전쟁이었다. 그 정치인은 당시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로, 자신의 대외정책에 군을 종속시켰다. 군사적 견지가 아닌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어떤 때는 진격 속도를 늦추거나 어떤 때는 무리한 공격을 결정했다.
후자의 예가 프로이센의 승리를 결정지었지만, 프로이센군 1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뒤펠 요새 공격이었다. 지휘관들은 엄청난 희생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했지만, 비스마르크는 듣지 않았다. 덴마크 영토에 대한 침공을 의미하는 이 공격으로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열강이 반발하겠지만 승리하면 이런 외교적 문제는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군에 대한 비스마르크의 우위에 군은 반발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단호했다. "군대는 정치 행위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못 박았다. 군도 지지 않았다. 전쟁 장관 알브레히트 폰 론은 이렇게 반박했다.
"어떤 군대도 스스로를 '순수하게' 정치 도구나 외교적인 수술을 위한 의료 도구로 간주하거나 이해한 적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정부가 특히 국민의 무장병력에 의존하는 상황이라면(지금이 그런 상황인데) 정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군대의 견해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현대 용어로 말하면 '문민 우위' 원칙은 절대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 역사학자 새뮤얼 헌팅턴도 인정한다. 저서 '군인과 국가'에서 정치인이 군사 전문능력의 영역을 침범할 경우 군사적 효율성을 고려한 군의 불복종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군사 전문능력에는 자국민 보호 의지와 이를 실행할 전투력도 포함된다. 당연한 소리다. 그런 의지와 능력이 없는 군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지켜보기만 했던 우리 군의 한심한 모습은 문민 우위 원칙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자아낸다. 군이 '정치 불간섭'을 핑계로 정치 도구로 자진 격하해 국민 보호 의무를 저버린 정치집단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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