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은 고쳐야

예천군 묻지마 가로수 식재 15억 혈세 낭비… 이제는 달라져야

예천군청 인근 식재됐던 둥근소나무 가로수의 수고가 낮아 운전자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이팝나무로 교체됐다. 윤영민 기자
예천군청 인근 식재됐던 둥근소나무 가로수의 수고가 낮아 운전자 시야 확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이팝나무로 교체됐다. 윤영민 기자
윤영민 기자경북부
윤영민 기자경북부

잘 못한 일을 뒤늦게 후회하며 수습한 상황 등을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쓴다. 잃은 것, 고친 것에 투입되는 비용이 수 억원이라면 어떨까.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사안에 따라 그 경중은 다를 것이다.

경북 예천군에서 일어난 '묻지마식 가로수 식재'를 실례로 들 수 있다. 해당 가로수들은 제대로 된 적합성 조사 없이 심어진 탓에 대부분 고사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식됐다. 이 때문에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의 행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2016년 예천 신도시와 원도심을 잇는 남본교차로~오천교 구간에 메타세쿼이아 1천140주가 식재됐다. 2014년 예천군청 인근 4차선 구간에는 둥근소나무 105주가 심어졌다. 경북도가 예천군에 기증한 메타세쿼이아 식재에는 약 10억원, 예천군에서 심은 둥근소나무는 6천580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두 구간 조경수 교체에 약 10억7천만원의 예산이 쓰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 두 구간에는 메타세쿼이아도, 둥근소나무도 없다. 메타세쿼이아는 생육 환경 등이 적합하지 않아 식재될 시기부터 줄곧 고사가 이어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둥근소나무는 운전자의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강제 이식됐다. 이 때문에 원래 가로수가 있던 자리에는 벌써 새로운 수종의 가로수가 교체돼 심어졌다. 두 구간에 새로운 가로수를 심는 데는 총 3억8천100만원이 들었다.

이를 보면 메타세쿼이아의 생육 환경에 대한 적합성 조사나 둥근소나무의 수고(樹高)가 낮아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것이라는 판단 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모두 15억원에 달하는 혈세가 낭비됐다.

가로수로 수억원을 낭비했다는 지적에도 아직 경북도와 예천군은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치지 않은 채 다시 소만 채워 놓은 듯하다. 가로수를 교체했다고 끝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발주처인 행정 당국이 해당 수주 업체에 책임을 묻고 이런 일이 반복해 발생하지 않도록 되짚어야 한다.

우리의 속담은 교훈을 준다. 행정 당국은 이 일을 교훈 삼아 다른 모든 행정에도 적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주민의 냉랭한 민심은 바뀐 행정으로 보여줄 때에 회복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