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읽남] 대중가요 '고양이 노래' 반세기史 ③

Auguste Renoir(르누아르) - Woman with a Cat(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1875)
Auguste Renoir(르누아르) - Woman with a Cat(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1875)
에이핑크 - UNE ANNEE(2012), 마마무 - Melting(2016)
에이핑크 - UNE ANNEE(2012), 마마무 - Melting(2016)

※추석 연휴 파일럿(pilot, 시험) 콘텐츠로 '음악 읽어주는 남자'를 연재합니다. 대중가요가 굴곡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내지는 우리의 일상을 어찌 다독여줬는지 주목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매일신문 주간지 '주간매일'에 2014년 연재한 '음반 읽어주는 남자'를 '음악 읽어주는 남자'로 명칭을 바꿔 게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줄임말이 '음읽남'인 것은 똑같습니다.

(2편에서 계속)

▶주로 인디 뮤지션들이 이런저런 고양이 노래를 발표하던 중, 걸그룹 전성시대이기도 했던 시기에 두 걸그룹이 발표한 고양이 노래가 있습니다. 스타일이 상반됩니다.

먼저 나온 '에이핑크'의 '고양이'(2012, UNE ANNEE)는 사랑스러운 콘셉트의 에이핑크가 부른 만큼, 발랄한 고양이 찬가의 전통을 잇습니다. 고양이와 쥐가 등장하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도 소재로 등장합니다.

'나는 리본고양이 날 잡아보란말야. 좀 재미있겠어. 퍽이나 신나겠어. 너를 따라다녀볼래. 난 어디든지 갈래. 넌 잡힌 Jerry, go.(제리, 고) 널 잡을 T.O.M. go.(티.오.엠(톰의 영문명 스펠링), 고) 부비부비부부부. 기분이 좋아. 이미 알고 있잖아. 난 너를 좋아해.'

이후 나온 '마마무'의 '고양이'(2016, Melting)는 반대 분위기입니다. 소속사 RBW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여자들의 신경전을 고양이의 살랑대는 걸음 속에 감춰진 앙칼짐에 빗대어 표현한 재치가 돋보인다는데요. 노랫말이 정말 그렇습니다.

'뻔한 애교와 앙큼한 꼬리 좀 흔들지 마. Don't you dare Don't you dare.(돈츄 데어 돈츄 데어) 날을 세워 너를 할퀴어. 아주 살며시 다가가 스치듯 부비지마. 어딜 니 맘대로 자꾸 넘봐. 힘 빼지 말고 저리가.'

복고풍도 있습니다. 이제는 대선배격 보이그룹 '신화'의 '고양이'(2015, WE)입니다. 21세기가 한창 무르익은 시기에 나온 곡이지만, 영락없이 20세기 이승철과 터보가 구사한(기사 1편 참조) 고양이 노래 스타일의 재연입니다.

'새까만 눈동자. Ah Ah Ah Ah Ah Ah. 가만히 눈을 감아. 힐끔 내 머릴 홀려 놔. Ah Ah Ah Ah Ah. 한 마디도 없어 숨 쉴 수 없어. Yeah Yeah. Don't Touch Me.(돈 터치 미)'

막내격인 걸그룹 '아이즈원'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2019, HEART*IZ [ep])는 선배 보이그룹 동방신기가 15년 전인 2004년 데뷔곡 'Hug'(허그)에서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 Oh Baby(오 베이비)"라고 불렀던 것에서 이어지는 맥락으로 분석됩니다.

동방신기 - Hug single(2004), 아이즈원 - HEART*IZ [ep](2019)
동방신기 - Hug single(2004), 아이즈원 - HEART*IZ [ep](2019)
피제이 feat. 자이언티 - 나비야(2017) 뮤직비디오 캡처
피제이 feat. 자이언티 - 나비야(2017) 뮤직비디오 캡처

▶고양이라는 단어가 아예 들어가 있지 않은 고양이 노래도 요즘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표현하는 단어로 고양이의 오래된 애칭인 '나비'가 있는데요.

흑인음악 보컬리스트 '자이언티'가 가사를 쓰고 목소리를 얹은, 힙합 프로듀서 '피제이'의 '나비야'(2017, WALKIN' Vol. 2)가 한 예입니다.

'낯선 이를 보면 도망쳐버리는 어떤 동물처럼 다가가기 힘들어. 나비야 어디 가. 부끄러워하지 마. 너나 나나 똑같아. 우린 동물도 사람도 아니야. 그 순간 어깨에 올라탔지.'

'Hey(헤이) 음 나비야 what is your name.(왓 이즈 유어 네임) 자꾸 물어봐서 미안 난 궁금해. 네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근데 네 목걸이에 주소가 써있네.'

피제이의 설명에 따르면, 사립탐정이 된 자이언티가 한 여자로부터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는데, 사실 고양이는 의뢰한 여자더라는 내용입니다.

비비 - 나비(2019) 뮤직비디오 캡처
비비 - 나비(2019) 뮤직비디오 캡처

이어 싱어송라이터 비비(BIBI)가 '나비'(2019,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고양이의 입장에서 노래를 풀어냅니다. 그 시각이 참신해 의미를 부여해봅니다.

애칭이라며 붙이는 나비는, 또한 채운 목줄은, 실은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마음대로 붙이고 또 채운 것이라는 메시지가 신선합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넘쳐나는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보고 고양이들이 "난 구경거리가 아니야"라며 싫어할 수 있다는 식의 상상도 눈길을 끌고요.

집사라면 고양이에게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얘기랄까요. 이건 사람에 대한 예의로도 바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잠깐의 삶, 길고 따분한 붉은 실이 아님. 풀어줘. 내 목줄과 이름표에 나비는 내가 아님. Camera camera(카메라 카메라) 꺼라. 난 구경거리가 아님.'

'Why are you calling me(와이 아 유 콜링 미) 나비, 나에 대해 아는 게 뭐니. 네가 보는 건 내가 만든 환상, 사랑해야 할 이유를 줘 당장 right now.(라이트 나우) 따순 밥과 이부자리 목줄 또는 이름 말고, 나에게 진심을 줘 너에게 진심을 줄게.'

산울림 -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1집(1979)
산울림 -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1집(1979)

▶고양이 노래를 시기 순으로 정리하다가 빠뜨린 곡이 있어서, 이걸 빼놓고 글을 마치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이 곡을 소개합니다.

가장 좋은 시(詩)는 동시를 닮았다는 얘기를 변주하면, 한국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록 밴드 '산울림'의 이 동요는 고양이 노래 수작입니다. 잘 익힌 관찰이 바탕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유가 탁월합니다. 산울림 멤버 김창완이 노랫말을 썼습니다. 산울림이 동요라고 규정한 이 곡도 대중가요라고 치면, 실은 고양이 노래 역사에서 가장 빠른 시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이 기사 1편에서 소개해드린 강병철과 삼태기의 미스쥐와 고양이보다 5년 앞섭니다)

제목은 '눈은 하얀 고양이'(1979, 어린이에게 보내는 산울림의 동요선물 제1집). 가사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눈은 하얀 고양이. 밤사이 창틀까지 소복이 쌓였구나.

눈은 하얀 고양이. 지붕 위 장독 위로 소리 없이 다녔구나.

내게 알려주면 소리 지를 텐데 달려가 볼 텐데.

언제 내리는지 언제 오시는지 알 수가 없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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