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라고 시킨 사실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다시 말씀드린다." 지난달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국회 예결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 그가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인 김모 대위의 전화번호를 넘겨준 사실이 드러났다. 전화를 걸라고 시킨 적이 없다니, 그 전화번호는 전화 걸지 말라고 준 모양이다.
"보좌관이 무엇하러 그런 사적인 일에 지시를 받고 하겠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검찰수사를 통해 보좌관이 그에게 이행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원장교에게 예후를 좀 더 봐야 해서 한 번 더 연장해 달라고 연장해 놓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지시는 없었다니, 앨리스의 '고양이 없는 웃음'처럼 지시 없는 보고만 남은 셈이다.
보좌관이 부대로 전화한 적 있느냐고 하자 이렇게 대꾸한다.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직접 번호를 건네주고 결과를 보고까지 받아 놓고서 알지 못한단다. "확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르면 확인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싫단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다 들통이 나니 이렇게 변명한다. "보좌관이 보고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닉슨을 사임으로 내몬 것은 도청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클린턴을 탄핵 법정에 세운 것도 지퍼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추 장관은 국민 앞에서 무려 27차례나 거짓말을 했다. 심지어 거짓말한 게 아니라 기억이 안 난 것뿐이라고 메타 거짓말까지 했다. 어느새 이 나라는 공직자가 국민을 속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됐다.
의원 보좌관이 어디 의원 아들 뒤치다꺼리하는 자리인가? 그의 월급도 국민의 혈세에서 나간다. 공복(公僕)이어야 할 보좌관을 집안의 머슴으로 쓴 것 자체가 이미 도덕적 스캔들이다. 게다가 서 일병이 애도 아니고 중증환자도 아닐 터. 직접 전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보좌관이 대신 전화를 했다면 뭔가 아들의 힘만으론 안 되는 게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어디 이게 이 건만이던가? 자대배치 받는 과정에도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즈음 서 일병이 동료들과 주고받은 대화에는 "아니 애초에 용산 보내줬어야지"라는 말이 등장한다. 통역병 선발과정에 청탁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이들도 여럿 존재한다. 선발방식이 면접에서 추첨으로 바뀐 것도 청탁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특히 통역병 선발을 위해 로비를 벌인 것은 국방부장관의 정책보좌관. 이 인물과 서 일병 사이에 대체 무슨 사적 관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상황은 추미애 장관이라는 고리를 빼면 애초에 설명이 안 된다. 따라서 그 행위의 범죄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과 별도로 자대배치, 통역병 선발, 휴가연장의 전과정에 청탁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게다.
과연 '검찰개혁'은 효과가 있었다.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넘겨주고 이행상황을 보고받았는데도 검찰은 이를 "지시라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상관 눈치 보느라 늑장수사에 봐주기 수사까지 한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검찰개혁'이었을까? 이젠 알 수 없게 되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개혁의 첫 수혜자가 전현직 법무부장관이었다는 사실이다.
면죄부를 받자 추 장관의 태도가 돌변했다. "야당과 보수언론의 거짓말임이 명명백백히 밝혀졌다." 외려 의혹을 제기한 쪽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간다. "사과 안 하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무관용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추안무치의 극치. 이분은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재능을 타고나셨다. 예, 장관님. 국민이 사과할게요. 저희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세요.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든지 보장받는 정당한 의료권과 휴가권"을 행사했단다. 도대체 대한민국 군인 중 의원 보좌관 통해 휴가연장 받고, 장관 보좌관 통해 통역병 선발 로비를 벌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이 '동물농장'이 됐나 보다. "대한민국 군인은 모두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군인은 다른 군인들보다 더욱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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