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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전망] 진정한 가황(歌皇) 나훈아

사진은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연합뉴스
사진은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 연합뉴스
최정암 서울지사장
최정암 서울지사장

오늘로 꼭 1주일이 되었건만 열기가 아직 식지 않는다. 추석 연휴 KBS에서 은둔 15년 만에 공연한 가황(歌皇) 나훈아 얘기다.

높았던 시청률(9월 30일 밤 방송 29%, 3일 나훈아 스페셜 18.7%)만큼이나 반향도 뜨겁다. 올 추석에는 코로나와 나훈아만 보였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2시간 30분 동안 28곡을 부른 그는 장기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건재를 과시했으며 국민들에게 위안을 선물했다.

74세의 나이에도 젊은이가 무색할 만큼 탄탄한 근육질 몸매. 한복과 찢어진 청바지, 민소매를 넘나드는 뛰어난 패션 감각. 무대를 지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가창력. 트로트에서 국악, 클래식, 기타 및 피아노 연주 등 장르를 가리지 않은 공연에, 다양한 액션도 선보였다. 공연은 어떤 젊은 아이돌보다 더 생동감이 넘쳤다.

나훈아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많은 애창곡을 가진 가수는 없다. 밤을 새워 불러도 모자랄 것 같은 그의 노래들. 그는 "할 거는 천지삐까리(엄청 많다는 경상도 사투리)다. 밤새워 할 수도 있다"고 장담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9곡이나 되는 신곡을 발표했다. 한 곡을 만드는 데 5, 6개월이 걸릴 만큼 힘든 작업을 거친다고 했다.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70대임에도 불구하고 뿜어져 나오는 이런 열정은 "세월은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가게 돼 있다. 이왕에 세월이 가는 거 끌려가면 안 된다. 날마다 똑같은 짓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하던 일을 해야 세월이 늦게 간다. 지금부터 나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설명을 들으면 다소 감이 잡힌다.

수많은 히트곡과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지만 공연 뒤 더욱 많이 오르내린 건 중간중간 맛을 더하는 촌철살인 코멘트였다.

특히 "옛날의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국민을 위하지 않는)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고 한 건 압권이었다.

그의 이 발언을 두고 추석 연휴 정치권은 서로 상대를 비난하면서 날 선 공방을 벌였지만 국민들은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역시 나훈아다운 입담이었다. 이는 빼어난 실력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두터운 팬에 자존감이 있기에 가능했다.

나훈아의 매력을 대쪽 같은 소신에 있다고 보는 팬들도 많다. 본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억측에도 불구하고 15년을 대중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대부분의 연예인이 선망하는 북한 방문도 거절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사전 행사로 열린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나훈아의 참여를 원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당시 '일정이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대중예술가로서 그의 자존감의 반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그는 삼성 이건희 회장가의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석해서 몇 곡만 해도 거액이 주어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나훈아는 "나는 대중예술가다.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사면 될 일"이라고 했단다.

얼마나 멋진 자존감인가!

나훈아는 국민들을 힐링시켰다. '노래 실력' '소신 발언' '소신 행동' 등 모두에서 그는 진정한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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