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그녀는 우주비행사이자 훌륭한 엄마였다…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에서 스톤(산드라 블록)이 우주로 간 것은 딸을 잃은 상처 때문이었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녀는 중력이 없는 고요한 우주선 안에서 태아의 모습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지구에 도착한 스톤이 땅을 움켜쥐며 우뚝 일어선 모습은 상징적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지구로 돌아온 것이다. 중력을 피해 지구를 떠났던 그녀의 방황이 끝이 났다. 이제 다시 태초를 맞이한 것이다.

우주의 영역은 이처럼 여성성과 대칭적인 관계이다. 우주는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의 영역이다. 그래서 하늘을 향한 여성 비행사와 우주를 향한 여성 우주비행사는 신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상징성을 갖는다.

15일 개봉 예정인 '프록시마 프로젝트'(감독 앨리스 위노커)는 엄마와 딸을 주인공으로 우주를 향한 여성성을 더욱 강조한 영화이다.

유럽우주국 프록시마 프로젝트로 화성에 가게 된 사라(에바 그린). 우주비행은 8살 때부터 품어 온 그녀의 꿈이었다. 각국에서 선발된 남성 대원들과 고된 훈련을 받지만 그 또한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7살 딸 스텔라를 두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어린 스텔라는 엄마의 과업이 얼마나 중요한 지 관심이 없다. 엄마가 옆에 있기만을 바란다. 이처럼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꿈과 딸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마의 고뇌와 죄책감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우주선이 발사되기 전 지구에서의 일을 담고 있다.

훈련 교관인 마이크(맷 딜런)는 갈등하는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완벽한 우주비행사도, 완벽한 엄마도 있을 수 없다." 다분히 남성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사라는 두 가지를 모두 잃고 싶지 않다. 두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성취하고 싶다. 육아와 일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은 워킹맘의 마음이다.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 스틸컷

우주로 떠나기 전 엄마는 한 순간이라도 더 딸과 있고 싶어 한다. 한 번 이라도 더 딸을 안고 싶어 한다. 그래서 발사 전 무균 대기 상태에서도 탈출해 딸을 만나러 간다. 엄마와 딸은 대지에 놓인 우뚝 선 우주선을 함께 본다. 그 우주선은 엄마와 딸, 여성성에 한계를 지어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그 운명을 떨쳐야 할 시간이다. 중력처럼 그녀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굴레를 벗어내야 할 시간이다. 지구로 귀환하겠지만, 엄마와 딸은 그 사이에 부쩍 성장하고, 대지를 벗어난 존재가 되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딸이 거친 대지를 뛰는 야생마의 자유도 함께 느끼기를 엄마는 바란다.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여성주의 영화다. 프랑스의 여성감독 앨리스 위노커는 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가다. 이 영화로 지난해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여성성에 대한 고심이 물씬 풍기는 영화다. "프랑스 여성은 요리를 잘 하니 우주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감내하는 사라는 차별받는 모든 여성들을 대변한다.

프록시마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큰 행성이다. 프록시마는 현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상징의 대상이다. 감독은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섬세하게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려낸다.

'씬 시티: 다크히어로의 부활'(2013)과 '300: 제국의 부활'(2014) 등에서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 배우 에바 그린은 딸을 걱정하는 엄마를 맡아 여리지만 강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인다.

우주비행사들의 혹독한 훈련 등을 화면에 담는 등 단순한 줄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는 평이한 편이다. 1960년대 미국의 우주개발에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성취가 있었다는 '히든 피겨스'(2016)와 같은 강력한 드라마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엄마라는 존재의 섬세한 감성과 죄책감, 아픔이 여성성을 극복하려는 강렬함과 함께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전세계 여성 우주비행사들의 실제 사진을 담고 있다. 우주 비행복을 입고 딸과 키스하는 러시아 여성 우주비행사 옐레나 콘다코바 등 모두 딸과 엄마의 모습이다. 옐레나 콘다코바는 1990년대 초 낙후된 우주정거장에서 연료부족과 기계적 결함과 사투를 벌이며 169일간 머물며 장기간 우주에 체류한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다.

그들은 모두 우주의 꿈을 실현한 여성이자 엄마들이다. 이 영화를 탄생하게 한 주역들인 셈이다. 107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최신 기사

  • 배너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