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 오디세이] 지조 없다고? 괄시하지 마! 단풍나무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복자기나무에 단풍이 곱게 들어 있다.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복자기나무에 단풍이 곱게 들어 있다.

단풍 소식은 봄날 북상하는 꽃 소식의 역주행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함께 서서히 남하한다. 산림청의 국립수목원이 제공한 올해 단풍 예측 지도를 보면 설악산은 이달 16일쯤 절정에 이르고 소백산은 이달 15일(±6일), 주왕산은 19일(±7일), 팔공산은 26일(±4일) 절정에 이른다. 기상청에서 해마다 예보하는 단풍은 산 전체의 20% 정도 물들면 시작으로 보고 80% 정도 물들면 만산홍엽이라 말한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停車坐愛楓林晩/霜葉紅於二月花'(정거좌애풍림만/ 상엽홍어이월화-늦단풍이 하 좋아 수레 멈추고 바라보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구나)라고 예찬했다.

가을이 되어 일교차가 커지고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나뭇잎의 엽록소는 사라지고 푸른색이던 나뭇잎들은 화려한 색상으로 바뀌며 숲을 수놓는데 이것이 단풍이다. 개옻나무나 붉나무, 화살나무, 담쟁이는 붉은색이거나 선홍색을 띠고 은행나무, 생강나무 잎은 노란색을 띠며 느티나무, 참나무류, 감태나무는 갈색으로 아름답게 물든다.

단풍 하면 단풍나무 이파리의 붉은 때깔이 으뜸이다. 순진한 어린이들이나 싱숭생숭한 청춘, 여인들의 눈길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흔히 단풍나무라고 하면 주로 단풍나무와 당단풍나무를 말한다. 당단풍나무는 단풍나무보다 북쪽에서 자라며 중국에도 많아 당단풍나무라고 부른다. 단풍나무류는 잎이 손가락처럼 갈래를 이루는 게 많은데 신나무는 잎이 3갈래, 이른 봄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 잎은 5갈래, 단풍나무는 7~9갈래, 당단풍나무는 9~11갈래다. 잎의 형태를 보면 '3신5고7단9당'이 된다. 정원수로 인기를 누리는 복자기나무는 잎자루에 잎이 세 개 붙어 있다.

잎이 마치 공작의 깃털 같다는 공작단풍, 중국에서 수입한 중국단풍, 봄에 돋는 새잎부터 붉은색을 띠는 홍단풍(노무라단풍)도 우리 주변의 공원이나 뜰에서 오색 창연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단풍의 화려한 색깔 잔치는 해마다 다르다. 기상과 토양의 양분도 큰 영향을 미친다. 비옥한 토질에서는 단풍이 늦게 들고 산성 토양은 단풍의 색깔이 더 선명하다.

유교의 영향이 깊었던 조선시대 사대부 정원에는 단풍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소나무의 독야청청, 대나무의 절개, 매화의 향기 등을 덕목으로 여기던 시대에 철 따라 색깔을 바꾸는 단풍나무는 지조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유박이 쓴 '화암수록'의 '화목구등품제'에는 배나무, 정향, 목련, 앵두나무와 함께 단풍을 7등에 넣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창경궁) 단풍정(丹楓亭)은 춘당대 곁에 있는데, 단풍나무를 많이 심어서 가을이 되면 난만하게 붉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요, 정자는 없다'고 기록된 걸 보면 궁궐에도 단풍나무를 심고 즐겼다는 뜻이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있다.

가을이 깊어 가면 나무의 잎자루에 떨켜가 생겨 영양과 수분 공급이 차단되고 잎을 떨굴 준비를 한다. 동해를 입지 않기 위한 나무의 월동 전략이다.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단풍은 푸르렀던 이파리가 소명을 다하고 초록빛이 퇴색되는,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는 노을이 더 붉게 빛나듯 단풍이 익어가는 과정에 화려한 빛깔을 뿜으며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그래서 만추에 나무는 자신을 비우며 휴식에 들어가 내년 새로운 생육을 대비한다. 단풍과 낙엽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성찰 포인트다.

코로나19로 삶이 더 팍팍해졌지만 짬을 내서 집 근처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들이 알록달록 예쁘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코로나블루나 세상 근심을 잠시 덜어 봄이 어떨까.

이종민 선임기자
이종민 선임기자

이종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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