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 500년 동안 호남과 제주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이 70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으면서 오늘날 광역시·도청 역할과 비슷한 '감영'에 누리꾼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감영(監營)은 조선시대 각 도에 파견돼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았던 최고의 지방 장관, 감찰사가 거처하는 관청으로 해당 도의 정치·문화·사회·경제·교통의 중심 도시에 위치했다.
각 감영소재지는 ▷경기감영(서울) ▷경상감영(상주) ▷전라감영(전주) ▷충청감영(충주) ▷강원감영(원주) ▷황해감영(해주) ▷함경(영안)감영(함흥) ▷평안감영(평양)에 있었다. 이후 함경감영은 1600년 함흥에서 영흥, 경상감영은 1601년 상주에서 대구, 충청감영은 1602년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했다. 17세기 들어 감영의 위치는 고정되면서 해당 도시를 중심으로 각 도의 중심지로 상징성을 꽃 피우게 된다.
감영의 최고 통치자인 관찰사는 도내 모든 군사, 민사 지휘 통제권을 이양받는 실권자였다. 아울러 임금의 특명을 받은 사신으로서 1년에 두 차례 수령을 비롯한 모든 외관에 대한 성적을 평가, 보고하는 일을 주로 했다.
감영의 일반적인 배치구조는 관찰사의 영역이 중심을 차지하고 부속 관원들의 실무처와 비관원 실무 행정관료들의 영역으로 구별된다. 모든 감영에서는 '선화당'이라는 건물이 존재하는데 관찰사가 서무를 집행하는 이곳은 삼문으로 구성돼 권위를 상징, 감영 전체 배치구성의 중심축을 담당했다.

감영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나오며 대부분 제 모습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단 한차례도 바뀌지 않고 전라도·제주도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은 1951년 한국전쟁 중 폭발로 완전히 사라졌다. 전라감영이 사라진 지 1년 뒤인 1952년 감영 자리에 전북도청사가 들어섰다.
전라감영 복원 논의는 전북도청사 이전 계획이 확정된 지난 1996년 시작됐다. 본격적인 복원사업은 도청사가 철거된 이후인 2017년 11월 시작됐다. 복원사업에는 104억원이 투입됐다. 그리고 2년 10개월 만에 1단계 사업이 완료됐다.한국전쟁 중 폭발사고로 사라진 지 약 70년 만이다. 본격적인 복원 논의가 시작된 지는 20여년 만이다.
앞서 대구시 역시 경상도 행정의 중심지였던 대구 중구 경삼감영 선화당을 복구해 지난 2017년 4월 시민에게 공개한 바 있다. 경상감영은 일제강점기 대구읍성 철거와 함께 본모습을 상당 부분 소실하며 이후 경북도청이 세워졌다. 인근 북성로를 중심으로 지역 최고 상권이 형성됐다 1966년 경북도청이 대구 북구 산격동으로 옮겨가고 난 뒤 공원이 조성돼 시민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대구시와 중구청은 경상감영공원의 원형 복원 을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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