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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돈', 길잃고 '버블' 폭탄되나?

세계적 현상…생산적 경제기반 구축이 관건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해 시중은행마다 투자처를 기다리고 있는 요구불예금이 급증하고 있다. 매일신문DB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해 시중은행마다 투자처를 기다리고 있는 요구불예금이 급증하고 있다. 매일신문DB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시중은행마다 쌓이고 있어, 향후 이 돈뭉치의 움직임에 따라 자산버블이 폭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자산버블에 대한 우려와 불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NH농협,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시중은행들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지난 9월 요구불예금 잔액은 8월에 비해 16조원 정도 늘어난 552조 5천864억원으로 조사됐다.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예금, 수시입출금식 저축성 예금 등 언제든지 입출금을 할 수 있는 '대기성 자금'의 성격이 강하다. '적당한' 투자처를 찾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의 확산, 주식시장 및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과 요구불예금의 움직임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1월 7조원 넘게 줄어들었던 요구불예금 잔액은 코로나19의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된 2월 무려 24조 7천380억원이 폭증했고, 이런 추세는 6월까지 계속 이어져 이 기간 동안 늘어난 요구불예금 액수만 80조원에 달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던 7월 요구불예금은 7조원 정도 빠졌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초보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대형 공모주 이슈가 열풍을 일으킨 시점과 일치한다. 이 시기에 부동산 시장에서는 '영끌바잉' '패닉바잉'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요구불예금은 8월 들어 13조3천억원이 증가한데 이어, 9월에 또 다시 17조원 넘게 늘어남에 따라 두달 사이에 무려 30조원이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요구불예금의 급증 이유에 대해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면서 정기예금 금리는 처음으로 0%대에 접어들었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가 되면서 정기예금을 할 아무런 이점을 갖기 못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 때문에 입출금식 통장 등 손쉽게 돈을 뺄 수 있는 곳에 '잠시' 넣어 두었다가 적당한 투자처가 생기면 곧바로 투자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보유한 현금에다 온갖 대출을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거나, 공모주 청약에 엄청난 자금이 몰려드는 것이 모두 이 현상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제조업 등 실물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제 가치보다 높게 평가된 자사가격의 거품이 어느 순간 사라질 경우 금융시장에 큰 변동성 폭풍이 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자산거품, 특히 엄청난 유동성에 따른 집값거품에 대한 우려는 세계적 현상이다. 세계 주요국의 통화공급(M2)을 나타내는 블룸버그 글로벌 통화공급지수는 올해 7월 87조 달러에 달했다. 올해 3월부터 계속해서 올랐고, 지난해 7월에 비해서는 13.2% 폭증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국의 집값은 계속 상승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위기 때는 집값이 평균 10% 하락했지만, 코로나19 사태에는 미국, 독일 등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집값이 5% 정도 오르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 프랭크는 올해 2분기 세계 주요 56개 국의 집값은 지난 1년 사이 4.7%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독일이 6.8%로 가장 높았고, 캐나다 5.9%, 프랑스 5.0% 순이었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는 코로나19는 평상시의 경기침체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발 경기침체가 고소득자와 현금부자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기 못하고 있고, 오히려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인해 '더 좋은 집'에 대한 구매 수요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못한 상태에서 과도한 유동성 공급에 따른 자산가격 상승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 또 어떤 부작용을 불러 일으킬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만 현재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근의 물가상승과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의 상승은 경기부양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기에 '긍정적'이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할 때, 이미 어느 정도 자산가격 급등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갈 곳을 잃고 은행에 쌓여 있는 뭉칫돈이 과연 경기부양의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자산버블의 폭탄이 될지 갈림길은 정부가 얼마나 생산적인 기업활동과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뭉칫돈'을 유도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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