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시시각각] ⑲ 구상나무의 경고

지리산 반야봉 정상 부근에 선 채로 하얗게 말라죽은 구상나무.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리산 반야봉 정상 부근에 선 채로 하얗게 말라죽은 구상나무.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그의 이름은 구상나무.

수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피난처를 찾아 씨앗 날개로 세월을 유랑하다

지리산 반야봉 자락에 정을 붙였습니다.

사는 곳은 지리·한라·덕유에서도

정상 부근 손바닥만한 자리 아고산대.

오직 한국에서만 자라

학명도 한국전나무(Abies koreana Wilson)입니다.

곧기는 대쪽 같고 자태는 미스 월드,

연말이면 모두 찾는 그 크리스마스 '트리'가

지금 너무도 아픕니다.

지리산 반야봉 정상부근에 선 채로 하얗게 말라죽은 구상나무 .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리산 반야봉 정상부근에 선 채로 하얗게 말라죽은 구상나무 .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유력 용의자는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겨울 눈이 적게 내려 더 목이 마른 봄 가뭄에,

잦은 여름 폭우와 더 사나워진 가을 태풍에

백년은 더 살 청춘인데 살 발린 갈치 마냥

뼈만 남은 채 반야봉 언저리에 떼로 섰습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지리산 곳곳에

미세기상측정장비를 설치해 추적한 결과

최근 8년 동안 반야봉 기온은 2.2도나 올랐고

고사목 수는 배로 늘었습니다.

앙상하게 고사한 지리산 반야봉 구상나무.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앙상하게 고사한 지리산 반야봉 구상나무.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동행한 지리산국립공원전남사무소 신창근 박사는

"공원연구원 수장고와 시드 볼트(종자 금고)에

종자를 넣고, 복원용 묘목도 키우는 중 " 이라했습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150m씩 산을 더 올라

천왕봉, 백록담 꼭대기까지 이른 구상나무.

더 오를 곳도, 더 도망칠 곳도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반야봉 정상부근 구상나무 고사목.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위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반야봉 정상부근 구상나무 고사목.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기후위기로

다급해진 세계가 목표로 제시한 아젠다입니다.

온실가스 배출 세계 11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4위 대한민국.

영문도 모른 채

오늘도 구상나무는 잎을 털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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