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세찾아 삼만리, 매물 실종된 대구 전세 "갭투자까지…"

임대차3법에 전세 세입자 내보내는 집주인들
소형평수는 전세가율 오르면서 갭투자 다시 시작되는 조짐도

8일 오전 한 시민이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붙은 아파트 매물표 앞을 지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8일 오전 한 시민이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에 붙은 아파트 매물표 앞을 지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가을 이사철이 한창인 가운데 대구지역의 전세시장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전세 매물 수가 급감하고 인기지역 소형평수에선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기현상마저 나타나는 등 전세 가뭄 현상이 극심한 상황이다. 전세난 해소를 위한 정부의 후속 부동산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급 전세난…대단지 아파트서도 전세 씨말라

이사철인 10월이 왔지만 대구지역에서는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7월말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기존 전세계약이 연장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신규 전세 물량이 급격히 줄었다.

특히 학군 선호지역이나 재개발·재건축 인기가 뜨거운 곳은 전세 매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9일 둘러본 수성구 만촌동 만촌우방타운1차 아파트 경우 전체 1천200여 가구 중 전세 매물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들은 "30평대 전세는 없다고 보면 된다. 전세가 너무 귀하기 때문에 이사 날짜만 맞으면 계약하는 식이다. (만촌3동)이 일대가 다 그렇다"고 입을 모았다.

1년전만 해도 5억원대~6억초반대에 거래되던 이 아파트 전용 84㎡은 인접한 신축 단지가 들어서면서 가격은 이사철인 현재 8억후반대까지 호가가 뛰었고, 전세가도 따라 올랐다는 것이다.

범어동 신축 한 아파트 84㎡ 경우, 불과 올 봄까지 5억~5억5천만원이던 전세가가 몇달새 6억5천~7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업계에 따르면 이런 전세 품귀는 대구 전역이 비슷한 상황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소급 적용되면서 기존 세입자 상당수가 전세 연장을 선택하는 가운데, 여유가 되는 일부 집주인들은 전세가격 인상이나 매매 편의를 염두에 두고 직접 입주를 선택하면서 역대급 이사철 전세난이 빚어지고 있다.

전세 세입자나 세입 예정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대구의 한 전세 세입자 A씨는 "앞으로 3년 정도 더 전세에 살아야 할 입장인데 계약갱신청구권도 쓸 수 없게 집주인이 들어오겠다며 집을 비워 달라는 상황"이라며 "전세집을 구하려니 매물 자체가 없다. 지금 아파트는 2년전 1억8천만원 하던 전세가 2억4천만원까지 올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년 상반기 결혼을 앞둔 B 씨도 대구에서 전세 구하기가 버겁다. B씨는 "집을 사면 주택청약 시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지원하지 못해 전세를 원하고 있는데, 주말마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물건이 거의 없다. 결국 전세를 살려면 불편하더라도 시 외곽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7월말 계약갱신청구권 소급 적용…전세난 더욱 부추겨

대구지역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도 전세난을 호소하는 게시물이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고 있다.

한 이용자는 "집주인이 매도하고 싶다던데 나가주고 싶어도 전세가 없어서 나갈 수가 없다. 예전에 전세 놓던 물량을 다들 매매로 내놓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전세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대부분 전세가와 비슷한 수준의 융자가 있더라. 전세가 귀한데도 남아 있는 물량은 이유가 있는거구나 하고 느꼈다"고 했다.

지역 공인중개사 업계도 전세난을 실감하고 있다.

수성구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10월이면 전세가 한참 나와야 할 시기인데 평소의 20~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수급문제, 계약갱신청구권을 고려한 금액 설정으로 가격이 폭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매물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굳이 4년간 같은 가격에 전세를 놓을 바에 매물로 내놓고자 하는 임대인도 늘고 있다. 특히 비슷한 평형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사람 경우,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염려해 전세를 준 집에 본인이 들어가고 기존 집은 매물로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전세가 무섭게 오르면서 갭투자 조짐마저 다시 보인다.

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에 실수로 매매 물건을 전세로 잘못 올렸더니 10분 만에 전화가 10통이 온 적도 있다"며 "신혼부부들의 경우 전세에 살면서 청약을 넣고자 하는 심리가 있어서, 소형평수를 중심으로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갭투자까지 다시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가 부동산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전세난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차순연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임교수는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일시적 2주택자 양도세 면세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보니 집주인들이 다들 전세를 안 놓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다주택자 견제 정책이 결과적으로 전세대란을 낳았다. 추가 대책이 없으면 시장의 극심한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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