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6일 아베 총리의 건강을 이유로 2기 아베 내각이 총사직을 하면서, 7년 8개월간 이어져 온 역대 최장 정권이 돌연 막을 내리게 됐다. 아베 정권이 이전 정권과 아주 크게 다른 부분은 이차원의 금융완화정책(양적・질적 금융완화),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 그리고 성장전략정책이라는 소위 '세 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이다. 그중 적극적으로 추진된 앞의 두 개 화살이 남긴 부의 유산을 살펴보고자 한다.
장기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3년 4월 첫 번째 화살인 이차원의 금융완화정책을 실시했고, 수차례에 걸쳐 수정 확대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첫 번째 화살은 소비자물가상승률 2%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원통화 증가와 국채 매입 외에 회사채, 상장투자신탁(ETF) 등 다양한 금융자산을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행은 이차원 금융완화정책 도입 시점에 비해 본원통화를 약 4배 정도 늘렸고, 국채 매입 규모도 매년 80조엔까지 늘려 전체 국채의 약 절반을 매입하고 있고, ETF를 통한 상장기업 주식 매입을 19배 증가시켰다. 일본은행은 곧 일본 국내 주식시장에서 일본연금기구를 제치고 최대 기관투자가로 부상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이례적인 금융완화정책하에서 일본은행의 자산 규모는 605조엔으로 2013년 3월 말 시점의 자산 규모와 비교해 3.7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물가상승률 2%는 달성하지 못했다.
금융정책뿐만 아니라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도 확장 기조를 유지해 2019년부터 정부의 일반 예산이 100조엔을 넘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채무 총액은 1천182조엔(GDP 대비 207%)이 되었고, 아베 정권 동안 약 260조엔이 증가했다.
아베노믹스의 시나리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돈을 퍼부으면 물가가 상승하는 한편으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기업, 특히 수출 대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어 국내 설비 투자 확대와 새로운 고용 창출이 이루어져, 그 결과로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서 내수 확대로 이어지고 다시 물가 상승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될 것으로 상정했다. 더불어 선순환 구조의 확립에 따라 세입이 늘고, 물가 상승으로 명목 정부 채무의 부담이 낮아지면 정부의 채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시나리오의 예상대로 기업의 수익은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고용도 늘고, 물가도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디플레이션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작년까지 노동력이 부족할 정도로 고용 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일본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997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상승하지 않았다. 명목임금 상승이 낮은 물가 상승에도 미치지 못한 관계로 실질임금은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베노믹스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기업 부문에서 임금을 올리지 않아서 생긴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민간 소비지출은 억제되고 있고, 소비 성향이 왕성한 청년층의 평균 소비 성향이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수를 늘리고, 그에 따라 물가를 올려 기업의 수익을 높이고, 그 결과로 다시 투자와 고용을 확대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선순환 구조의 확립은 어렵다.
아베노믹스가 상정한 시나리오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공급된 유동성과 GDP의 2배가 넘는 정부 채무는 문제인 채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환율과 주가에 큰 변동이 생기면 이미 일본은행이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처할 여지가 많지 않고,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 공급으로 유지되고 있는 제로금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자율이 상승하면 국채 등 채권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국채 보유가 많은 일본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은 큰 손실을 입게 되고, 기업도 주식 가격의 하락과 이자 부담 증가로 이익 감소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와 고용은 감소하고, 경제는 불황에 빠질 것이다. 정부도 국채의 이자 부담 증가와 국채 발행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가장 규모가 큰 사회보장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어 경제 회복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남긴 부의 유산을 어떻게 잘 처리하느냐에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뿌려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아베노믹스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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