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병이 쉬 물러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이번 주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고 취약지를 집중 관리하는 핀셋 방역으로 전환하는 조치가 내려졌지만 살얼음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영업장 폐쇄를 감내해 왔던 업체들도 일단은 환영 일색이지만 언제 또 영업중지 명령이 되풀이될지 마음 졸인다는 소식이다. 관련 시설이 휴관을 반복하는 바람에 발달장애아를 둔 가정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책한다는 아픈 이야기도 뉴스를 탔다.
노인복지센터가 문을 닫아 하릴없는 표정으로 말 그대로 구들장만 지킨다는 어르신들의 무력감은 또 어떤가? 식구들이 집에만 있다 보니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한다는 주부들의 이른바 '돌밥' 푸념은 오히려 복에 겨운 투정으로 들린다. 역병은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무심하게 보냈던 '일상'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함으로써 자신의 위세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대부분 고통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딴 세상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이들에게 코로나는 남의 일이고, 강 건너 불이다.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대중교통 기사에게 손찌검을 하는 무뢰배나 나만 즐기면 된다는 심사로 거리두기를 무시하며 유흥업소를 들락거리는 일부 젊은 층들이 주로 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추석에는 귀성도 자제하고 가급적 가족들과 집에 머물러 달라는 방역 당국의 권고를 한 귀로 흘리고 기어이 관광지로 몰린 사람들은 또 어떤가? 장사 안돼도 좋으니 제발 오지 말아 달라는 관광지 상인들의 역설적인 애원이 어떤 의미인지 이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이 터널의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에 따른 피로감의 누적은 당연히 개인은 물론 사회적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나는 이로부터 비껴 서 있더라도 남을 배려하여 자신을 단속하는 것이 이즈음 사람다움의 품격을 잃지 않는 행동일 터이다. 하여, 이럴 때는 왕년의 흑백사진처럼 평소 밀쳐 두었던 '사람다움'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다시 꺼내 생각해 보는 것도 역병이 주는 고통을 선물로 전환시키는 지혜이리라.
우리는 왜 사람다움을 실천하며 살아야 할까? 다시 말해, 우리는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할까? 얼른 떠오르는, 그러면서 이런 식의 질문에 공식처럼 주어지는 대답은 만약 윤리적으로 살지 않으면 서로 이기적이 되어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므로 모두가 공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 대답은 반쪽짜리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왜 윤리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것이 충분한 답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공동체 그런 거 나는 몰라! 어차피 이기는 놈이 다 먹는 게 약육강식의 이치 아니야? 모두가 공멸한다는 건 약한 놈들 논리일 뿐이야. 나는 누구하고 붙어도 이길 자신 있어!', 불행히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이런 사람들에게 공동체 질서 운운하는 대답은 쇠귀에 경 읽기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사람은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종교인이라면 대답은 쉬울 수 있다. 그것은 절대자의 뜻이자 가르침이니까. 그러나 이런 대답이 비종교인에게 먹혀들 리 없다. 그러면 이들까지 포함할 수 있는 답변은 무엇일까? 유감스럽게도 이를 만족시키는 대답은 없다.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윤리적 결단'일 뿐이다. '절대적이며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윤리적인 삶보다 윤리적인 삶을 살겠다. 그것이 내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인 까닭이다'라고 하는 결단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런 결단을 하며 살아간다. 교육의 결과일 수도 있고 스스로 깨친 성찰일 수도 있는 이 결단이 우리를 사람다움으로 이끈다.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답게 사는 쪽을 택하겠다.' 자신은 비록 괜찮더라도 이웃이 고통받고 있는 이 환란의 시대에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꺼내 먼지를 털고 새롭게 닦아내야 하는 다짐이 아닐까?
박 원 재 율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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