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그로테스크한 남과 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집단체조를 관람하고, 열병식 참가자 및 경축대표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조선중앙TV가 12일 보도했다. 기념사진 촬영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경축대표 및 열병식 참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집단체조를 관람하고, 열병식 참가자 및 경축대표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조선중앙TV가 12일 보도했다. 기념사진 촬영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경축대표 및 열병식 참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는 말이 있다.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할 때 쓰는 표현이다. 남한과 북한에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펼쳐져 전 세계 시선을 붙잡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봉쇄한 '재인산성',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심야에 진행된 북한 노동당 창건 열병식에선 괴기한 것들이 대거 목격됐다. 바퀴가 22개 달린 이동식 발사대에 실린 세계 최대 규모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괴물'(怪物)로 일컬어졌다. 한 발로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어 요격이 훨씬 어려운 괴물로 보인다는 게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년에 걸쳐 남한·미국을 상대로 평화 쇼를 하면서 ICBM 등 '신무기 4종 세트'를 개발한 북한 자체가 괴물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의 북한식 표현)를 걱정하면서 수만 명 군중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 함성을 지르고 횃불 행진한 것도 괴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를 막는다며 바다에 표류하던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까지 소각한 만행과는 배치되기 때문이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내며 눈물을 보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그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주민들의 모습도 생경(生硬)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극장(劇場) 국가 북한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에도 광화문 광장에 차벽이 쳐졌고 인도에 철제 펜스로 만들어진 미로식 통행로까지 등장했다. 외신 기자들은 "평양의 군사 퍼레이드도 두 번 가 봤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 "지금 서울은 완전히 우스꽝스럽다. 미쳤다"고 했다. '재인산성'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는 발상이 그로테스크하다.

한글날인 9일 경찰이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 설치된 펜스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글날인 9일 경찰이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 설치된 펜스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괴기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김 위원장에 대한 정권의 저자세와 짝사랑이다. 김 위원장의 "북과 남이 다시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는 말에 정권은 반색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우리 국민이 잔인하게 살해됐는데도 김 위원장의 "미안" 한마디에 감읍했던 그대로다.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괴기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그러려니 치부할 수 있지만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로테스크한 일이 잇따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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