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은 574돌을 맞이하는 한글날이었다.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였으니 금년이 94주년이다. 2006년에 이르러 마침내 국경일로 지정됐으니 역사에 비추어 국경일로서 연륜은 짧은 편이다.
한글날을 제외한 국경일(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은 국가의 성립이나 국권과 관련해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한글날만이 유일하게 문화유산을 기리는 기념일인 셈이다.
일찍이 알려진 바와 같이 한글은 조선 제4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해 반포한 우리 고유의 문자이다. 한글은 만든 자와 반포일 및 글자를 만든 원리가 알려진 세계 유일의 문자라고 한다.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한글 자형의 과학적 조형성을 극찬한 바 있다. 그는 훈민정음이 15세기에 이미 현대 언어학의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상당히 과학적인 문자라고 했다. 현대 언어학에서 주목받은 '음소'(의미를 구별하는 음의 최소 단위) 개념에 이미 도달했다는 이유에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훈민정음의 탄생 과정이 적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였던 사실을 보아도 그러하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한글의 탄생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이야기 소재일 듯싶다. 조선의 지식인 계층인 양반은 한문으로 문자 생활을 향유했다.
반면에 하급 관리나 서리 출신의 중인 계층은 이두를 사용해 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고 정보 공유가 가능했다. 결국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까지 절대다수인 일반 서민들과 부녀자만 문자 생활을 누리지 못한 셈이다. 이에 따라 지식은 자연스레 양반의 독점물이며, 지식의 독점은 사회적 기득권 수호에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세종 14년에 명나라의 법률인 '대명률'의 번역 작업을 놓고 세종과 이조판서 허조가 대화한 기록을 보면 지식 독점에 대한 상호 입장 차이가 명료하다.
허조는 백성이 율문을 알게 되면 법을 농간하는 무리가 있을 것을 염려한다. 백성이 율문을 알면 쟁송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반면에 세종은 백성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고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옳은가를 일갈한다. 일반 백성에게 법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 범죄 예방을 우선시한 것이다. 지식의 확산을 통해 조선을 계몽하기 위한 진보적 관점이다. 결국 세종의 이와 같은 신념은 훗날 한글이라는 발명을 통해 지식 확산의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최초 특허법의 기원은 1474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특허법에서 찾는다. 그러나 현대 특허법의 모태는 공익 위배 대상 특허 불인정을 공시한 1624년 영국의 전매조례(Statute of Monopolies)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흔히 특허는 독점권을 부여해 발명의 주체인 개인을 보호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특허제도는 독점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발명에 독점권을 부여하되 해당 기술의 빠른 확산을 통해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자연 원리인 조음 위치를 명확히 파악해 이를 아(어금니), 설(혀), 순(입술), 치(이), 후(목)로 나눠 그 원리로 글자를 창작한 한글의 기술 사상은 특허법에서 정하고 있는 발명의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아울러 한글의 창제는 절대다수의 조선 서민에게 지식의 확산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바, 이 또한 공중에게 공개된 발명을 이용해 진보된 발명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산업 발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특허법의 목적에 명확히 부합된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시기는 최초의 특허법인 전매조례 제정 시기보다 200여 년 앞선 시점이다. 특허법이 추구하고자 했던 기술 확산과 정보의 공유를 일찌감치 구현한 것이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별개로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과 취지만으로도 한글은 위대한 발명으로 손색이 없다. 법의 존재 이유와 목적은 외면되고 법에서 보장된 수단만이 활용되는 작금의 여러 사안을 접하며 새삼 한글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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