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왜 친일인가

조정래 작가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정래 작가가 지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이제 어떻게 하냐.'

친일 문제를 파고들던 임종국 작가의 아버지는 임문호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천도교 청우당 대표로 친일 회의를 주재하고 국방헌금을 모집한, 친일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았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친일 행각을 발견한 아들은 오열하며 여동생 앞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어떻게 하냐"면서. 그러나 아버지는 "내 이름을 빼려거든 너 그 책 쓰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임종국은 그렇게 나라를 망친 친일파와 친일 행각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그의 대학 은사였던 한 총장의 친일 행적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1994년 완간을 목표로 친일파 총서 집필에 나섰으나 1989년 11월 타계하면서 친일파 연구에 매진한 삶을 마쳤다. 그의 고단했던 친일 연구의 행적은 뒷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으로 이어졌고, 친일파 청산의 한 길을 열었다. 친일 인명사전 발간 등은 그런 결과였다.

34년 11개월이 넘는 일제 식민 통치로 많은 사람이 친일의 비단길을 걸었고, 반일과 항일의 가시밭길을 마다 않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과 달리 부귀를 누렸고 자식에게 재산도 남겼다. 그들 친일 후손은 덕분에 항일의 '3대가 망(亡)하는 삶'과 달리 '3대가 흥(興)하는 길'을 광복 이후에도 거칠 것 없이 달렸다. 친일로 일군 재산과 권력은 세대를 이어 도약의 기회가 되었으니 친일의 생명력은 질기고도 강했다.

이런 악몽 같은 어두운 친일의 청산은 오늘날 더욱 힘겹고 어렵다. 전문가 무리로 무장한 후손들이 법의 방패 아래 되레 친일 재산을 되찾겠다며 소송마저 당당하게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런 꼴이니 임 작가의 아버지처럼 그들에게 지난날의 일을 덮지 말고 밝혀 역사의 양심에 맡겨 처분받게 하자는 주문은 더욱 할 수 없다.

이런 친일 후손과 뒤섞여 살아가는 시대인 만큼 친일은 민감하다. 물론 친일 문제를 가리고 없었던 일로 넘어가거나 합리화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난 12일 조정래 소설가처럼 "일본 유학을 갔다 오면 친일파, 반역자가 된다"고 몰며 새로 친일파를 만들 일도 아니다. 경륜 있는 노(老)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이번 친일파 발언은 아무래도 실언(失言)이 아닌가 싶다. 굳이 분란이 될 만한 말을 한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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