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다윈. 그리고 지렁이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지렁이에 관한 공부를 하면, 자료의 종착역은 다윈의 지렁이에 관한 논문 한 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알고 있었지만 지렁이에 관해서도 위대한 과학자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다윈은 호기심이 많고 끈질기게 관찰하기로 유명했다. 언젠가 정원사가 3년 전 목초지에 석회를 뿌렸는데 7㎝ 땅 밑에서 보인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다윈은 흘려 듣지 않았다. 지렁이 똥이 지구의 땅을 평평하게 한다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윈은 주위의 비웃음을 무시하고 같은 면적의 기름진 땅과 척박한 땅을 1년 동안 관찰하면서 지렁이 똥양의 차이가 있는지 비교했더니 2배나 차이가 있었다. 작은 확신을 가지고 관찰 장소를 확장하고 체계적인 자료 수집을 하면서 지렁이가 1년 동안 지구 표면에 똥으로 6㎜ 두께의 흙을 만든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죽기 1년 전 41년간의 연구 결과를 단 한 편의 짧은 논문으로 내게 된다. '지렁이 분변토에 대한 고찰'.

150년이 지난 후 일본의 한 과학자가 의문을 가진다. 지렁이 똥이 1년에 6㎜ 두께로 흙을 뒤집는다면 현재는 90㎝ 밑에 다윈이 관찰했던 석회가 묻혀 있지 않을까? 런던의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행정적인 절차를 밟고 자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삽을 들고 다윈 기념박물관이 있는 런던 근교 다운 마을로 가게 된다. 많은 자료를 찾고, 후손들을 만나서 석회가 묻혔던 장소를 찾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추측으로 선정한 장소를 쇠꼬챙이로 찌르고, 흙을 파 보았지만 결국 석회는 찾지 못한다. 그리고 짧은 보고서를 남긴다. '석회는 어디 있을까?'

참 감동적이었다. 다윈도 그렇지만 일본의 니즈마 아키오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150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관찰을 높게 평가했지 다시 한번 확인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흔히 엉뚱한 생각을 비웃는다. 그것이 돈이 되느냐, 밥 먹여 주느냐는 소리도 많이 한다. 그런데 그런 엉뚱한 생각이 세상을 즐겁게 하고 때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우린 짧은 기간 동안 참 치열하게 살았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세계에서 이런 기적은 없다고 평가한다. 이제까지 엉뚱한 생각은 비효율적이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좀 엉뚱한 생각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만큼 여유도 있다. 10년 전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칭기즈칸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에서 말타기하는 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근처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며칠째 텐트를 치고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십 년 만에 나타나는 별을 관측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취미라고 했다. 엉뚱한 일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내 가슴이 뛰었다.

니즈마 아키오가 영국으로 지렁이를 확인하러 간 지 30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그때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다시 한번 땅을 파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내의 연구자들에게 설득을 했더니 전부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일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니즈마 아키오와 같이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쿄의 대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길래 수소문을 했다. 그런데 10년 전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럼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 동료를 구해서 영국으로 땅을 파러 가볼까? 영국으로 석회를 찾기 위해 같이 삽을 들고 땅을 파러 갈 동료는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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