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폐교 막아라'…의성 안계중·고 모교 살리기 사투

[속속 문 닫는 경북 초·중·고교] '폐교 막아라' 지역사회 비상
"아이들 없으면 지역 미래 없어" 학교 자구책·총동창회 모금 운동
안계고 전교생 77명 '위기' 동문 뭉쳐…타지역생 유치·기숙사비 지원 계획
학교 문 닫으면 동창 구심점 사라져…인근 상권도 폐업, 동네 활기 잃어

의성 안계중고등학교 동문들은 모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자 장학금과 기숙사비 등을 지원,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의성 안계고 전경.
의성 안계중고등학교 동문들은 모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자 장학금과 기숙사비 등을 지원,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의성 안계고 전경.
의성 안계중고등학교 총동창회가

폐교가 지방소멸 전조로 받아들여지면서 지역사회도 비상이 걸렸다.

모교를 잃을 처지가 된 동문회는 '학교를 지키자'며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고, 사라지는 학교를 지켜보는 지역 주민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학교 통폐합 정책의 당사자인 교육당국은 작은 학교 유지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당국의 힘만으로 폐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으며, '지역 전체'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 "모교 살리자"

"70년이 넘은 유서 깊은 모교가 폐교되는 모습을 좌시할 수 없다는 동문들의 위기의식이 큽니다. 학교가 무너지면 의성 지역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어요. 학교와 동창회, 지역사회가 협력해 학교와 지역을 다시 일으키는 기폭제가 돼야 합니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안계중학교를 졸업한 A(62) 씨는 최근 총동창회에 사비 200만원을 내놨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살리자'며 지난달 25일 시작된 모금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안계중·고등학교는 1946년 개교 이래 의성군 서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교였다. '58년 개띠'인 A씨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남자중학교에 65명씩 9개 반이 있었다. 그러나 거듭된 인구 감소로 올해 안계고는 정원 44명(2개 반)에 한참 모자란 16명(1개 반)만 입학했다. 전교생은 77명에 불과하다.

코앞까지 다가온 폐교에 대한 '위기의식'은 동문들을 뭉치게 했다. 학교 측에서 자구책을 내놓은 뒤 도움을 요청했고, 총동창회는 이달 말까지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모금액으로 타지역 학생을 유치하고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기숙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는 수백만원의 생활지원비를 지급할 계획도 있다. 1억원을 목표로 진행 중인 모금은 이미 상당액이 채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준영 안계중·고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30명 안팎이던 연간 입학생 수가 반토막이 나면서 이대로 가면 모교가 폐교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컸다"면서 "의성군 서부에 있는 고등학교는 안계고가 유일하고, 학교가 없으면 지역의 미래도 없다. 학교를 살리는 게 곧 지역을 살리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많은 동문들이 모금에 동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의성 안계중고등학교 총동창회가 "학교를 살리자"며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총동창회 측이 안계고 인근에 내건 펼침막의 모습.

동창회의 움직임에 지역사회와 학교도 호응하고 있다. 의성군 서부 7개 면에 있는 학교들이 인근 위천강을 모티브로 삼아 '위수교육공동체'를 구성한 것이다. 지역민들의 협조와 동창회 지원, 교육당국의 노력을 합쳐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을 일으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백승덕 안계고 교장은 "의성군 내 중학교 3학년생 수가 내년도 고교 입학 정원에 비해 약 150명 가까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만약 내년에도 1개 반밖에 운영하지 못한다면 현재 2개 반을 유지하기 힘들고, 결국 폐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이 없는 지역은 살아남기 어렵다. 젊은 층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가 활성화되면 장기적으로 지역경제도 살아나고, 학생들의 경쟁으로 발전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폐교로 구심점·커뮤니티 상실"

폐교를 막으려는 필사적 시도는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 차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경북도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를 도입해 소규모 학교의 폐교 방지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농어촌 소규모 학교에 예산을 집중 지원해 특색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학구(學區)를 확대, 도심지역에 사는 학생이 주소지 이전 없이도 작은 학교로 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올해 경북에서 초등학교 97곳, 중학교 11곳이 자유학구제를 도입해 370여 명의 학생이 작은 학교로 전입했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많게는 전교생의 절반에 이르는 50여 명의 학생이 전입하기도 했다. 도심 학교의 과밀은 해소되고 작은 학교의 교육여건이 나아지는 등 폐교 방지에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재학생 수 34명으로 폐교 위기에 내몰렸던 경북 영주시 봉현초등학교 역시 '특성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2008년 경북에서 처음으로 학교 안에 '마을 도서관'을 조성해 지역민 커뮤니티 역할을 자처했고, 2009년 '전원학교'로 지정되면서 학생들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하는 등 학생 유치를 본격화했다. 올해도 봉현초 학생 수는 86명으로, 농어촌 학교 중에서는 나름대로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학교가 단순한 교육의 장을 넘어 동문들의 '구심점'이자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폐교를 겪었던 지역 주민과 동문들은 "폐교 이후 동문회 운영도 뜸해져 추억이 사라졌고, 지역사회 전반이 활기를 잃었다"고 입을 모았다.

폐교한 경북 김천상고 졸업생 A(64) 씨는 "학교가 사라지면서 인근 상점들도 모두 문을 닫아 텅 비었고, 아이들이 없으니 동네 분위기도 더 삭막해졌다. 체육대회를 하려고 해도 장소가 마땅찮고 동창들의 구심점도 사라져 요즘은 거의 만나지 않게 됐다. 착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8년 폐교된 경북 예천농고 졸업생 B(59) 씨도 "폐교 이후 경북도립전문대학이 들어서면서 모교 건물이 대부분 철거됐다. 추억을 회상할 장소조차 남지 않았다"며 "또 다른 모교인 지보중학교도 폐교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모교 두 곳이 모두 폐교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 "지역사회 전체가 협업해 폐교 막아야"

폐교를 막기 위해 교육당국은 물론 각 시·군을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당국 업무'라는 이유로 소액의 장학금 지원 등 소극적인 대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경북도가 폐교 위기 학교를 지원하는 예산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귀농·귀촌 정책을 다루는 농업정책과에도, 소멸 위기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인구정책과에도 학교 지원 예산은 없다.

경북 내 기초자치단체들이 학교 지원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예산 수준은 많지 않다. 의성군은 경북도교육청과 함께 4억원을 들여 의성미래교육지구 사업을 추진 중이고, 군내로 입학 또는 전학 온 학생에게 연간 20만원의 전입학생 학자금을 준다.

영양군은 10억원을 들여 외부 강사 초빙 등 방과 후 지원 사업을 한다. 군위군은 방과 후 학습을 지원할 공립학원을 운영하거나 기숙사 운영비 및 장학금을 군비로 지원한다.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나서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시·군립 기숙사 건립 등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지역 내에서 원거리 통학을 하느니 대구 등 대도시로 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아서다.

초교 2학년 딸을 둔 C(42·군위군 산성면) 씨는 "아이를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해주고 싶어 군위로 왔는데, 정작 주변에 또래 친구가 없으니 하교해서는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게 일상"이라며 "초등학생인 지금은 괜찮지만, 중학교부터는 학생이 너무 적어져 대구 등 도시로 이사 갈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포항남울릉)은 최근 경북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도시 지역 지자체는 기업 등과 협업해 특화형 교육을 제공하는 기숙사형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교육, 주거, 산업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이정미 대구경북연구원 사회디자인연구실장은 "폐교에 따른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교육과 주거, 산업을 아우르는 복합 정책이 필요하다. 폐교는 비단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충남 홍성군의 '풀무학교'는 지역 공동체의 거점으로 자리잡으면서 그 학교 때문에 귀농귀촌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지역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면서 "학교는 지역 자산이기 때문에 학교를 기점으로 지역을 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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