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막 창업 한 변호사 팀이라고 한다. 법무법인 광고를 해왔던 터라 당연히 사무소 광고 요청인 줄 알았다. 오해였다. 저렴함 비용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는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광고가 필요한 것이었다. 의아했다. 계속 법무법인을 운영하는 나름 안정적인(?) 길을 뒤로하고 10팀 중에 9팀이 망하는 스타트업을 선택하다니. 하지만 그런 의외성에 나는 그들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내용증명이 일반 시민들에게 너무 문턱이 높습니다. 비용도 부담되고요. 사실, 내용증명은 분쟁을 피하자는 의미도 있는데 잘 못 인식된 측면이 많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창업 동기였다. 정말 매력적인 이유였다. 그들은 최대한 간단한 방법과 최소한의 비용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는 서비스를 오픈했다. 그리고 광고가 필요했는데 그때 나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시장 파괴자를 좋아한다. 배달의 민족이 그랬고 넷플릭스가 그랬다. 어쩌면 변호사가 업계에서 이들의 서비스를 싫어할지 모른다. 변호사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쓴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시장이 원하고 대중이 원한다면 그 브랜드를 살아남으니까. 결국 판단은 시장이 하는거니까.
역삼동의 팁스 창업 오피스에서 만난 그들은 얼굴에 간절함을 쓰고 나타났다. 숨소리, 제스쳐, 음성, 눈동자에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오늘 두 팔을 헬리곱터처럼 돌리지 않으면 당장 물속에 가라앉아 익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행동으로 설득시켰다.
대구로 돌아오는 SRT 기차 8호차 7D에 앉아 아이디어만 생각했다. 미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북극곰을 만나고 싶었다. 코O콜O에서 너 사진을 수 십년째 무료로 쓰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인터뷰 하고 싶었다. "북극곰아, 나랑 같이 내용증명 보낼래?"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잡아먹히기 전에 내용증명을 보낼 수 있다면 성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애완견도 생각이 났다. 주인이 자신에게 허락도 없이 CCTV로 감시하는게 기분 나쁘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게다가 애완견은 옷도 홀딱 벗고 있는데 말이다. 인권도 있지만 견권도 있다고 설득하고 싶었다. 지금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 외에도 미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오늘 아침도 그들은 테헤란로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명함을 뿌렸다고 한다. 요즘처럼 무료 온라인 광고가 판을 치는 세상에 최저가 명함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간 것이다. 간절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간절함 앞에서 누가 그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그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간절함이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죽을 만큼 힘들 때가 오면 살아날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된다고. 광고인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인의 열정이 가장 불타는 때는 계약금이 가장 클 때가 아니다. 응급실에 실려와 피를 토하며 삶의 대한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브랜드를 마주할 때이다.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광고인이 허투루 일할 수 있을까.
그들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들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관심 갖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36.5도라는 체온을 선물 받는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온도는 0도다. 0에서 시작해 100도까지 가야 비로소 끓는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50도, 78도 심지어 99도에서 포기한다. 눈앞에 100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테헤란로 팀이 몇 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직 36.5도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또 확실한 건 곧 사람이 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50도, 80도를 넘어 100도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땀이 비료가 되어 그들의 발자국이 탄탄한 토양을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함 열매를 맛 볼 것이라 믿는다.
오늘 창업을 했다면 오늘부터 간절하자. 당신 뒤에는 아무도 없다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텨내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