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재 사고로 얻은 장애… 서예로 극복한 지역민 이야기

1986년 화재 사고로 심한 화상 입고… 2년간 '두더지' 생활
서예로 극복하고자 시도, 자필 붓글씨 매일신문에 실리기도
"앞으로 장애인, 노약자 위해 살고파… 늦깎이 대학생 도전"

김봉록(64.오른쪽) 씨가 배기철 동구청장으로부터 장애극복상을 수여받고 있다. 대구 동구청 제공
김봉록(64.오른쪽) 씨가 배기철 동구청장으로부터 장애극복상을 수여받고 있다. 대구 동구청 제공

"한번 죽다가 살아났는데 못할 게 뭐 있겠어요? 이제 남은 시간은 노약자와 장애인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불행한 사고로 얻은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이어온 지역민의 이야기가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불행은 추운 겨울에 갑작스레 찾아왔다. 대학 졸업 후 구미 소재의 방산 업체에 다니던 김봉록(64) 씨는 1986년 2월 금오공대 학군단 졸업식 당시 사단장이 타고 있는 헬기 착륙을 유도하다 온몸에 불이 붙는 사고를 당하게 됐다. 50사단 측에서 소이탄을 연막탄으로 오인해 김씨에게 건넨 탓이다.

이로 인해 그는 안면, 목, 양손 등 노출부위에 3도 이상의 심한 화상을 입게 됐고 기도 손상으로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7번에 이르는 대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으나, 심한 화상흉터로 인한 대인기피증과 사고 트라우마는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김씨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인간관계도 단절된 채 2년의 시간을 보냈다. 야밤에 마스크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산을 오르는 게 유일한 외출일 정도로, 자신을 숨기던 시기였다.

그는 "당시엔 길가는 행인들이 모두 화상으로 변해버린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았다"며 "그래서 두더지처럼 굴을 파고 그 속에 나를 감추며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한동안 절망 속에 빠져있던 김씨를 꺼내준 것은 다름 아닌 서예였다. 젊은 시절 서예에 관심이 많아 틈틈이 붓글씨를 연마하던 모습을 기억하던 아내와 친지들이, 재활의 일환으로 서예를 다시해보는 건 어떠냐고 권한 것이다.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붓을 쥔 김씨는 1988년 봄, 율산 리홍재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꾸준히 글씨를 쓰니 화상으로 오그라들었던 손도 조금씩 풀렸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9월 30일 매일신문 7면에 실린 여자핸드볼 대표팀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김봉록씨의 붓글씨 사진. 매일신문DB
1988년 9월 30일 매일신문 7면에 실린 여자핸드볼 대표팀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김봉록씨의 붓글씨 사진. 매일신문DB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계기도 이맘때 찾아왔다. 88서울올림픽 당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핸드볼 대표팀을 축하하고자 쓴 대형 붓글씨가 매일신문에 실린 것이다. 이때 그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김 씨는 "내 글씨를 전 국민이 본다는 생각에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웠다"며 "한동안 내 삶을 가득 채운 우울증 대신 '내가 못할 건 없다'는 자부심이 생겼던 순간"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김봉록(64.오른쪽) 씨가 배기철 동구청장으로부터 장애극복상을 수여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 동구청 제공
김봉록(64.오른쪽) 씨가 배기철 동구청장으로부터 장애극복상을 수여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 동구청 제공

이날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씨는 달성군 현풍지역의 한 중소기업에 재취업해 27년간을 성실히 근무한 후 명예퇴직을 했다. 2017년부터는 대구 동구 신천3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장애인 행정도우미로 활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김씨는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늦깎이 대학생이기도 하다. 복지센터를 찾아오는 장애인들과 노인들에게 보다 전문성 있는 도움을 주고 싶어 내린 결정이다. 그는 "앞으로의 배움을 바탕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고 전했다.

한편 대구 동구청은 김봉록씨의 사례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다고 판단해, 지난 19일 김씨에게 장애극복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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