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사돈언의(査頓言意) 1607

임종대
임종대

'사돈(査頓)'은 혼인한 두 집의 부모들끼리 또는 두 집안의 같은 항렬끼리 부르는 이름말이라고 '이야기상식백과'에 전한다.

사돈의 '사(査)'가 떼목사고, '돈(頓)'은 꾸벅거릴 돈인데 '사돈'이라는 말의 뜻과 연관성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서 자녀를 시집장가 보내는 관계를 '사돈'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그 말의 뜻인 언의(言意)를 고려의 예종 때 명장 윤관과 오연총에서 찾을 수 있었다.

1107년 윤관과 오연총은 17만 대군으로 북쪽의 여진족을 토벌하여 9성을 쌓는 등 큰 공을 세우고 개선하였다. 이에 예종 2년 윤관은 원수(元帥)가 되고, 오연총은 부원수(副元帥)가 되었다. 1109년 기주성에서 패하여 탄핵을 받기도 했지만, 후에 윤관은 문화시중(門下侍中)이 되고, 오연총은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한 두 사람은 자녀를 결혼까지 시켜 혼인관계를 맺고 함께 대신의 지위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령에 들어서는 냇물을 사이에 두고 인근에 살면서 종종 만나 전날을 회고하며 정겹게 지냈다.

어느 봄날 윤관이 자기 집 술이 잘 익어 오연총과 한 잔 나누고 싶었다. 술을 지워 오연총을 방문하러 냇가에 당도했는데 밤비에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어 머뭇거렸다. 그런데 문득 냇물 건너편에서 오연총이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윤관이 물가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반가워 소리를 높여 물었다.

"대감, 어디를 가시는 중이오?"
윤관이 대답했다.
"술이 잘 익어 대감과 한 잔 나누려고 나섰는데 물이 불어 이렇게 서 있는 중이오."
오연총도 잘 익은 술을 가지고 윤관을 방문하려는 뜻을 전했다. 반가워서 서로 환담을 나누다 피차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 오연총이 윤관에게 말했다.
"우리가 환담을 나누기는 했지만 술을 한 잔 나누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오!"
그러자 윤관이 말했다.
"정히 그러시면 이렇게 합시다. 제가 가지고 온 술을 대감의 술로 알고, 대감께서도 가지고 온 술을 제가 가지고 온 술로 알고 드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 두 사람이 통나무(査)를 깔고 앉아 이편에서 '한잔 드시오' 하면 머리를 숙이고(頓首) 잔을 비우고, 저편에서 '한잔 드시오'하면 머리를 숙이고 잔을 비워 가지고 온 술을 다 마시고 돌아왔다. 흔히 서로 마음이 통하여 술을 주고받으면 심통주작(心通酒酌)이라 하는데, 자녀를 장가 시집보내 마음을 나누는 사이였다. 이 일이 고려 조정의 고관대작들에게 풍류화병(風流話炳·멋있는 이야깃거리)으로 알려졌다. 이후 자녀를 결혼시키는 사이를 '우리도 사돈(査頓·서로 머리 숙이며 술을 나누는 사이)을 맺어 봅시다'고 회자되었다. 이 이야기가 민가에까지 전래되어 오늘날 사돈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양가 집안의 촌수에 따라 지칭이 다르게 되었다. 양가 부모끼리는 사돈 또는 '맞 사돈', 아내 되는 사람끼리는 '안사돈', '사부인(査夫人), 사돈의 부모에게는 '사장(査丈)', '안 사장', 사돈의 조부모는 '노사장(老査丈), 노사부인(老査夫人)이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이외 사돈의 사촌형제나 친척 등에는 '곁사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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