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행복으로 가는 공정의 차표

산 자들(장강명/ 민음사/ 2019)

연대_이은영
연대_이은영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날지 않는 새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날아 본 게 언제인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 나는······"(378쪽)

공정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공정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공정의 개념을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불이익에 익숙해진다고 해야 할까? 학연, 지연, 사회적 관계 등에 내세울 것 없는 우리는 어느덧 누군가에게 밀리고 또 밀리고, 때로는 밀리는 것조차도 모르게 밀리면서도 그 체념을 조용하게 잘 삭이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고,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공정사회 개념에서 벗어나 버린 걸까? 장강명의 '산 자들'을 읽으면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비상을 꿈꾸지만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는 약자들의 이야기이다. 그 약자는, 약자로 자리 매겨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때로는 나의 이야기, 아니면 너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세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1부 자르기는 '알바생 자르기'(해고), '대기발령'(구조조정), '공장 밖에서'(해고, 구조조정, 노조)로 구성되어 있고, 2부 싸우기는 '현수동 빵집 삼국지'(자영업, 경쟁), '사람 사는 집'(재건축), '카메라 테스트'(취업), '대외 활동의 신'(지방대, 취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3부 버티기는 '모두, 친절하다'(고단한 샐러리맨들의 일상 모습), '음악의 가격'(예술노동자의 애환과 구조적 문제),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급식 비리와 맞서는 학생들)로 구성되었다.

10편의 단편 중 특히 감명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 '모두, 친절하다'는 주인공이 살면서 가장 운이 없었던 날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만난 모든 분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절한 분이셨고, 바쁘고 짜증 나 있었던 건 주인공이었을 뿐이었다. 관점에 따라 가장 운이 없던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인 것이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급식 비리에 맞서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기준, 주원, 제문은 급식 비리 학교를 상대로 학교에 전단지도 뿌리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교감 선생님의 협박에도 맞선다. 결국 중,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뒤바뀌는 것으로 수습되었지만, 기준은 끝까지 변화를 위해 버티고 있다.

장강명의 소설은 어렵지 않다. 내 이야기나 주변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빠져들었다가 어느덧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내 삶이 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이 사회적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한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깊은 울림을 받게 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정의란 미덕(美德)과 공동선(共同善)으로 향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의와 공정은 서로 배려하고 공동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10년, 20년대의 대한민국을 그린 장강명의 소설 '산 자들'에서는 이렇게 소외되고 아픈 일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미래는 배려와 공동 행복 지향으로,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공정이라는 차표가 있다.

이은영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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