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산 서사리유적에서 16세기 조성된 하양현 사직단터 확인

'국조오례의' 사직단 배치 전형 잘 남아있어 복원에 귀중한 자료

경북 경산 하양읍 서사리 유적에서 조선시대 하양현(河陽縣) 사직단터가 확인됐다.

경북 경산 하양읍 서사리 유적에서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 하양현 사직단터가 확인됐다. 사진은 하양현 사직단터 전경 모습.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경북 경산 하양읍 서사리 유적에서 발굴조사 중 조선시대 하양현 사직단터가 확인됐다. 사진은 하양현 사직단터 전경 모습.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이 사직단터는 (재)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이 무학산 남쪽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구간의 경산 서사리 유적 발굴조사 중 확인해 22일 현장을 공개했다.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신(社)과 곡식신(稷)의 보살핌을 기원하기 위한 제례 공간으로서 조선시대 지방현에서 관아, 향교와 더불어 중요한 시설이다. 사직단은 일제 통감부가 1908년 칙령으로 시설을 철폐시켜 거의 파과돼 현재 전국에 남아있거나 복원된 곳은 서울과 대구 노변, 경남 산청 단성, 창녕, 전북 남원, 충북 보은 등 6곳 정도에 불과해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재이다.

하양현 사직단은 당초의 모습은 잃었으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나와있는 사직단 배치의 전형이 잘 남아 있어 귀중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양현 사직단터는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구획된 제단을 둘러싼 낮은 담장인 유(壝)와 내부에 제단이 설치된 형태로서 유문, 예감(瘞埳·제사를 마친 후 축문, 혼백 등을 태우고 묻기 위한 구덩이, 보도, 배수로, 유 외곽의 둘래 담장인 주원(周垣) 등 시설물이 확인됐다.

유는 잡석을 사용해 평면형태 방형으로 축조했으며, 동서 길이 19.3m, 남북 길이 20.7m 규모이다. 유문은 남쪽 유의 중앙에 위치하며 2.1m의 간격을 두고 주춧돌 2기가 남아 있다. 예감은 유 내부 서북쪽 모서리에 위치하며, 평면 방형으로서 길이 90~109cm, 깊이 63cm 규모이다.

또 제단과 주원은 빠져 없어진 것이 심한 편이지만, 그 위치와 대체적인 규모는 파악이 가능한 편이다. 배수로는 남쪽 유와 나란하게 설치되어 유문 바깥으로 연결되는 'T'자형이며, 유문 안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평기와를 덮은 암거 형태이다. 암거에 사용된 평기와 등으로 보아 사직단의 조성시기는 1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화랑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사직단은 1908년 훼철된 이후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면서 "하양현 사직단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예감이 발굴되는 등 사직단의 내부 시설의 배치 형태가 드러나 사직단 복원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앞으로 조사지역의 경계를 벗어나는 일부 시설에 대한 확장 발굴조사를 통해 하양현 사직단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 유적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초기 철기시대 목관묘 5기, 삼국시대 석실묘 1기, 사직단터 1기 등의 유구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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