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퇴계 이황에 대한 연구는 주로 철학사상에 집중돼 있었다. 그만큼 그의 일상생활과 제가(齊家), 생활 모습 등 신변을 둘러싼 연구는 별로 없다. 이 책은 고 권오봉(1930~1999) 박사의 1986년 일본 츠쿠바대학 박사학위 논문 '이퇴계 가서(家書)의 총합적 연구'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가족과 친지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퇴계의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가서란?
퇴계는 주변의 사람에게 편지를 많이 썼다. 편지를 통해 집을 다스리고 집안 사람을 교육하며 처세술을 훈계했다. 친근한 사이의 대화와 측근에서 멀어진 수많은 집안사람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어 교훈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의지를 전달했다.
퇴계는 또한 서간을 중요한 저술로 보았으며, 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주자서절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자기를 글로 반성하고 있을 정도이다. 자신의 서간을 '자성록'으로 엮어 스스로 돌아본 것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다.
퇴계의 서찰은 확인된 것만 2천여 편에 달한다. 그 중 가문 내의 사람들에게 보낸 서찰이 937편이 있다. 친구, 지인, 문하생 등에게 답한 서찰을 서간(書簡)이라 하고, 가문의 사람들에게 보낸 서찰(書札·편지)을 가서라고 한다.
퇴계는 가서로 집안사람을 교육하고 자신의 거취와 건강상태의 진상을 입증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과 대응책도 일려줬다.
◆"인권을 차별하지 않은 퇴계"
"지금 들으니 젖 먹일 종이 서너 달밖에 되지 않은 제 자식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는구나. 이것은 그 자식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중략) 대여섯 달 동안은 (제 자식과) 함께 먹이게 하면서 서로 살게 하다가 , 여덟아홉 달쯤 되어 여기서 올려 보낸다면, 이 아이도 역시 죽을 먹임으로써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한다면 둘 다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게 정말 옳지 않겠느냐? (중락) 먼저 편지로 고하니 다시 생각해 보아라."
서울에 살던 손자가 아이를 낳았으나 산모의 젖이 잘 나오지 않자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종을 유모로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퇴계가 쓴 답장이다. 이 서간은 퇴계가 손자에게 유모를 서울 집으로 보낼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퇴계의 증손자는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이 서간은 인간 생명을 사랑하고 자기 자손과 노비의 인권을 차별하지 않은 퇴계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른의 역할 몸소 실천한 퇴계, 현시점 호출 필요"
책은 상·중·하 총 3권으로 돼 있다. 상권은 수신(修身), 중권은 제가(齊家), 하권은 치국 평천하(治國平天下) 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책임하에 퇴계학 전문가인 이상린·진갑곤 박사가 한문 번역을 맡고, 김정곤 박사가 일본어 번역을 맡았다. 부록에는 이주용 사진작가가 촬영한 안동 등지의 퇴계 관련 유적과 풍경 사진을 실었다.
책임 및 교열을 담당한 최재목 교수는 "덕은 없고 덕망있는 어른을 잃어버린 법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어른의 역할을 몸소 실천한 퇴계를 호출한 필요가 있다"면서 "교육에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동건 영남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은 "퇴계 선생을 알고자 하는 분들이 필독해야 할 책이라고 판단해 힘들게 펴냈다"며 "이 책으로 퇴계학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깊이 연구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천20쪽(상중하), 10만원.
▷저자 권오봉은
저자(1930~1999)는 영남대 국문과와 대학원을 수료하고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포항공대 창설팀으로 초빙돼 교양학부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동암공전'(東巖公傳), '충의공전'(忠毅公傳) '퇴계시대전'(退溪詩大全), '퇴계서집성'(退溪書集成) 등이 있다. 퇴계학 국제학술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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