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의 영화 "앤트맨"(2015년)에서 스콧은 개미만큼 작아졌다 다시 커졌다를 자유자재로 반복하며 수퍼히어로로서 활약을 펼친다. 히어로는 슈퍼맨이나 헐크처럼 힘이 세고 덩치가 커야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고 오히려 개미만큼 작아지는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탄생했다.
요즘 작은 마이크로 칩 위에 인체를 올려놓으려는 과학자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영화 앤트맨처럼 실제로 사람이 개미만큼 작아져서 마이크로 칩 위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주요 장기들을 칩 위에 올려놓으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왜 궂이 작은 칩 위에 인체의 장기들을 올려놓으려고 할까? 이제 휴먼 칩을 만들고 있는 과학자들이 꿈꾸는 것을 들여다보자.

◆인체를 마이크로칩 위에?
2010년 숨쉬는 허파가 마이크로 칩 위에 올려졌다. 이 허파 칩(Lung-on-a-chip)은 미국 하버드대학 위스연구소에서 허동은 교수가 개발한 것으로서 세계 최초의 장기 칩(Organ-on-a-chip)이다. 이후 심장, 간, 신장, 혈관, 뇌 등 인체의 여러 장기들을 마이크로 칩 위에 올려놓은 장기 칩이 세계 여러 연구팀에 의해 개발되었다. 또한 이렇게 만든 장기 칩을 이용하여 신약의 독성시험과 같은 응용연구 결과들도 여럿 발표되었다.
우리 몸 속의 장기는 각 장기가 고유한 주요 기능을 담당하며 또한 다른 장기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 하나의 장기만 올려진 장기 칩을 이용해서 독성시험이나 생물학적 실험을 진행하는 것보다 여러 장기들이 하나의 칩 위에 올려진 다중 장기 칩을 이용하면 더욱 좋다.
그러니까 하나의 마이크로 칩에 간세포와 혈관세포 및 신장세포를 올려 놓아 만든 다중 장기 칩이 보다 더 실제 우리 몸의 장기에 더 가깝다는 말이다. 이 다중 장기칩을 이용하면 하나의 약에 여러 장기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해 한꺼번에 알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장기들의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서 어떤 작용들이 일어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마이크로 칩 위에 인체의 여러 장기들을 올려 놓은 것을 휴먼 칩(Human-on-a-chip)이라고 한다.

◆휴먼 칩, 일반 세포배양과 뭐가 다를까?
실험실에서 일반적인 세포배양 방식으로 아무리 두껍게 세포배양을 해도 인체의 장기와 비슷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실험실에서 플라스틱 그릇에 세포를 담아 배양하면 바닥에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2차원적으로 배양된다. 그런데 인체 내 장기세포는 3차원적으로 자라고 있다.
또한 인체의 장기는 세포들로만 된 것이 아니라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주는 미세한 혈관들도 뻗어있고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층층이 쌓여 조직과 장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하면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한 종류의 세포들만 잔뜩 바닥에 붙어서 자란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미세유체 칩을 이용해서 그 칩에 장기세포를 배양하여 만든 장기 칩이 제안되었다. 장기 칩은 일반적인 실험실에서의 세포배양과 달리 3차원 형태로 세포를 배양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세포들을 혼합하여 세포를 배양하는 것도 가능하며 장기 칩의 미세유체 채널을 통해서 영양분과 산소가 들어있는 용액을 주입하여 세포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실제 인체의 장기와 더욱 비슷한 장기 칩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여러 장기들이 하나의 칩에 있는 휴먼 칩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휴먼 칩, 동물실험을 대체할까?
사람의 병을 고치기 위한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효능이 있는지와 독성과 같은 부작용은 없는지 시험하고자 동물실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 개발 중인 신약과 의료기기를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에 먼저 동물을 대상으로 시험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절차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물실험으로 인해 2018년 한 해에 372만 마리의 동물이 희생되었다고 농림축산식품부 보고서에 나와 있다.
신약이나 의료기기 개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동물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며 동물실험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도 지속적으로 찾고 있는 추세다. 유럽에서는 2013년부터 화장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부터 화장품 개발에 동물실험을 제한하는 화장품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 많은 동물들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으로 희생되고 있다. 이러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으로서 최근 장기 칩과 휴먼 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은 휴먼 칩이 개발 초기 단계에 있어서 당장 동물실험을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향후 지속적으로 동물실험을 대체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신약개발의 돈과 시간을 크게 줄여줄까?
동네 약국에 가면 약이 참 많다. 그런데 약을 하나 새로 개발하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돈과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신약을 하나 개발하는 데에 평균 15년이 소요되고 비용도 1조9천억원이나 든다고 네이처 리뷰 학술지는 밝히고 있다. 보통 신약 연구를 해서 1만개 정도의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한 다음에 발굴된 신약 후보물질들을 세포실험과 동물실험 및 최종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치게 되는데 대부분이 실패하고 만다. 1만개의 신약 후보물질 중에서 최종 신약 제품으로 출시되는 것은 겨우 1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신약개발 과정에서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휴먼 칩이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체의 장기가 올려진 작은 칩을 이용하여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을 시험한다면 빠른 시간 내에 저렴한 비용으로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체의 장기들과 유사하게 하나의 칩 위에 여러 장기들을 올려놓은 휴먼 칩을 사용한다면 특정 장기에 대한 신약의 효능과 독성뿐만 아니라 여러 장기의 유기적인 작용과 반응도 함께 볼 수 있어 좋다. 이러한 휴먼 칩이 미국 하버드대학과 에뮬레이트, 독일의 티스유즈 등 세계 여러 연구기관과 기업에서 개발되고 있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인체의 장기를 마이크로 칩에 올려놓는 장기 칩이 미래를 바꿀 10대 기술로 뽑혔다. 최근에는 이러한 장기 칩이 더 발전하여 휴먼 칩이 만들어지고 있다. 휴먼 칩은 우리의 몸을 대신해 신약의 독성이나 효능시험 등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또한 미세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 환경과 건강과 관련된 연구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인류는 이제 우리 몸을 대신해줄 미니어처 아바타를 갖게 되었으며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것이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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