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까지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는 예외 없이 처벌한다는 형법 입법예고안 의견 수렴 기간을 약 3주 남겨둔 가운데 여성 단체와 종교계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성 단체에서는 여성에게 낙태의 책임을 돌리는 인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며 낙태죄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종교계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무분별하게 침해해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할 수 있다며 일부 합법화에 반발하고 있다.
◆임신 증상 다양… 주수 제한 안 돼
여성 단체 측에서는 이번 법안을 두고 사문화된 낙태죄를 부활시킨 악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임신 24주 이후의 낙태는 예외 없이 처벌하도록 하는 등 처벌 기준을 더욱 구체화했다는 것이다.
현행 낙태죄에 대한 불만은 출산을 원하지 않는 부부들에게서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임신,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맘카페 등에서는 회원들에게 낙태 상담을 요청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육아 카페에 '임신 중 아이가 장애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한 이는 "최근 태아 기형아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 추가로 양수검사를 했는데 장애 확진 판정(다운증후군)을 받았다. 키울 자신이 없어 수술을 해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고 있는데 병원 찾기가 너무 힘들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글에는 "같은 상황이라 병원을 찾고 있다. 병원명을 공유해달라", "저도 아이에게 심각한 기형이 발견됐고 태어나면 잘못될 확률이 100%라고 하는데도 불법이라 수술이 안 된다고 한다. 정말 낙태법은 바뀌어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현행 법상 태아가 기형아라도 산모나 배우자가 우생학·유전학적 질환이 있는 경우 등에만 낙태가 가능하다.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이유로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낙태 허용 기간을 특정 주수까지 한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입덧, 태동과 같은 임신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태동을 임신 후반에 가서야 느끼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생리 주기가 너무 불규칙적이어서 임신 중기가 돼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여성도 있다"며 "입덧, 배가 나오는 정도 등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낙태 허용 주수를 일률적으로 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형법상 낙태죄 처벌 조항은 삭제하되, 임신 24주까지는 임산부의 의사에 따라 임신 중절을 전면 허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주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입법예고안에 대한 여성계의 반발과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낙태 허용 안 돼, 양육 여건 마련이 우선
최근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에서는 산모의 건강을 위해 낙태 허용 주수를 10주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의료계에서는 태아가 성장할수록 낙태 시술은 자궁 손상 등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고 향후 여성에게 난임, 조산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는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거친 뒤 임신 24주까지의 낙태도 허용한 것에 대해선 태아의 생존권을 위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내에서 임신 21주에 태어난 이른둥이들의 생존이 보고된 점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를 '임신 22주 내외'라고 본 판결과 배치되는 점 등을 들어 임신 중기의 낙태 역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교계에는 낙태 합법화가 결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낙태가 쉽게 이뤄진다는 풍조가 확산할 경우 출산을 원하는 여성을 위한 보호막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실에서는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 돼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출산 및 양육 지원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낙태 사유로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경제 여건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 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이 각각 33.4%, 32.9%, 31.2%(복수응답)로 높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낙태 여건 조성이 아닌,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남성에게도 지우는 등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용욱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는 "임신한 여성이 홀로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임신부터 남성에게 양육 의무를 지우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임신에 대한 책임성이 높이는 게 중요하다"며 "의학 기술의 발달로 향후 태아 생존 시기가 점차 당겨질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주수로 낙태를 허용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으며, 앞으로 낙태를 둘러싼 큰 의료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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