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시계 바늘 셋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도산 안창호는 약속을 중시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르침을 받던 제자로, 뒷날 독립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이관구(李觀求)에게 시계에 빗대 '절도'(節度)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시계의 시(時)·분(分)·초(秒) 세 바늘이 '절도' 있게 돌면 밤낮 24시간이 제대로 맞지만, 멋대로 서로 절도 없이 돌면 시간을 맞추지 못해 차라리 움직이지 않아 하루 두 번 맞는 시계보다 못하다는 비유였다.

도산이 말한 시계 속 세 바늘의 절도는 각각 제 역할이 있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야 시간을 알리는 일이 제대로 작동된다는 그런 뜻을 담은 비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사람에 빗대면 절도 없이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 도산의 깨우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제자 이관구는 망한 나라 대신 힘을 가진 일제 권력에 멋대로 빌붙는 친일(親日)도, 부일(附日)도 아닌 독립(獨立)의 길을 걸었다.

시계의 세 바늘은 서로 갈 길이 따로 있다. 또한 도산의 말처럼 각각 절도 있게 규칙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에 사람은 시계 속 세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에 따른 시간의 정확성을 믿고 살며 또 약속을 하곤 한다. 이런 세 바늘이 갖는 절도의 이치는 시계에만 적용될까. 세상일이라고 어찌 다르랴.

그런데 이런 시계 세 바늘의 원리를 갖고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비춰보면 심상치 않은 듯하다. 세 바늘의 절도에 이상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것 같다. 우선 경북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정부, 여당이란 두 바늘의 절도는 아예 없다. 이 두 바늘이 길을 벗어나 멋대로 돌며 감사원이란 다른 바늘 하나가 본연의 감사라는 절도 있는 일을 못 하게 한 게 들통났다.

특히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뜻에 맞춰 원전 조기 폐쇄에 맞을 기준을 의도적으로 만들었고, 여당 정치권은 감사원이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없게 압박했다. 이처럼 정부 여당의 두 바늘이 절도 없이 제 갈 길을 잃고 제멋대로 도니 밤낮 시간인들 맞을까. 나라의 다른 분야에서 도는 시계의 세 바늘은 어떤지 궁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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