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회장 우동기)는 2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2·28민주운동 60주년을 기념해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2·28 정신과 영국·프랑스·미국의 민주화 운동을 비교 분석해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민주화 선진국들의 저명한 국립대 교수 등이 대거 참석한 회의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광장정치가 확산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했다. 또 ▷학생운동의 변화상 ▷촛불 시위 참여에 대한 행동 패턴 ▷반정권 시위 전망 등 정치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 전망을 냉철한 시선으로 제시했다. 다음은 이날 공개된 정치 논제와 연구 내용의 요약이다.

◆노동일(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상임고문, 前 경북대 총장) - 기조연설
2·28민주운동은 1960년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10여 년밖에 안 되는 신생독립국에서 일어난, 보기 드문 민주항쟁으로써 재평가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2·28민주운동은 우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서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 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10대 고교생들이 주도함으로써 일제하 독립운동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위상을 복원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또 세계 민주운동사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2·28로 시작된 4·19혁명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터키와 태국 등 60년대 세계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2·28민주운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6개의 다른 민주화운동 단체들과 연대함으로써 전국화와 세계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진정으로 2·28민주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길이다.

◆윤성이(한국정치학회장, 경희대 교수) - 광장정치와 한국의 민주주의 : 세 가지 역설적 현상
한국정치에는 기존 정치이론이나 정치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 가지 역설적 현상이 존재한다.
첫째,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평가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정치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둘째 국회와 정당 등 대의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증가한 반면 2010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투표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셋째,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와 영향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하락하는 추세지만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활성화되고 힘은 더욱 강해졌다.
세 가지 역설적 현상은 제도·조직 vs. 시민·개인 간의 부조화 혹은 단절로 인해 발생하고, 미성숙한 제도정치를 강화하려는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광장정치 세력이 충돌하면서 나타난다. 이런 구도 속에서 대의제도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며, 광장정치가 이를 대체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본질적으로 사회구조가 다양화, 복잡화되고 사회의 균열(계급뿐만 아니라 젠더에 따른 분열 등)과 같은 시민사회 내부의 변화에 따라 일어난 것이다. 이같은 현상의 해소는 엘리트·제도·조직 중심의 전통적, 위계적 정치와 시민, 네트워크 중심의 수평적 정치 간의 조화 혹은 융합이 이루어질 때 가능해진다.

◆에릭 느보(Erik NEVEU, 프랑스 국립대학 교수, ARENES-CNRS) - 두 가지 역사적 사회운동(1968년 파리, 2016∼2017년 서울)에서의 민주적 상상력과 사회적 비판
프랑스의 1968년 68혁명과 한국의 최근 촛불시위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두 가지 역사적 사회운동을 연결하는 '키워드'를 제안한다.
첫째는 항의의 언어, 즉 동원의 핵심에 있는 요구인 키워드 및 가치가 무엇인가이다.(프랑스에서 도전은 계급, 투쟁이라는 틀이었고 한국에서는 법치주의였다) 둘째는 시위의 '문명화'를 향한 민주주의 성향의 관점에서 '시위 행동의 레퍼토리가 무엇인가'이다. 마지막으로 기억과 정치 세대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운동의 유산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
두 사회운동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지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제안할 수 있다. 첫째, 오늘날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정치가 시위와 치안을 위해 문명화된 조건을 제도화해야 하고, 정치적 협상을 위한 청문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늘려야 한다. 둘째, 68혁명과 촛불시위는 모두 부의 분배,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 증대 및 지위와 권력의 격차 증대 문제를 레퍼토리로 삼았다. 권력과 부, 영향력이 집중되어 불균형이 심화하면 민주주의는 시들게 된다. 셋째, 민주주의는 제도와 동원된 시민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이에 대한 내러티브와 동원 신화도 필요하다.

◆폴 플래더(Paul Flather,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Oxford University) - 현재의 위협과 변화하는 학생운동의 퍼스펙티브
21세기는 민주주의에 대한 권위주의적 도전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학생운동은 민주주의의 수호와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정된 정의는 없지만 표현과 시위의 자유가 중요하다. 이것은 '필요한 반란'이라고 부르는 개혁과 권력의 남용 및 부패에 대한 시정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의 학생운동 사례 즉, 독재정권에 항거한 1960년 2·28민주운동 그리고 최근의 촛불시위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직면한 양극화된 도전은 두 가지 구조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새로운 포퓰리스트 정치의 부상, 둘째, 대중 담론, 정보의 생성 및 공유 방법, 새로운 기술의 영향력이 그것이다. 포퓰리스트 운동은 민주주의 내에서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적 경향을 부추기고 민주주의 양극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공공정치에 다시 참여하게 됐다.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요인은 공공 담론에 대한 통제이다. 현재 미디어와 대중 담론은 통제되고 그 품질과 관심, 신뢰가 모두 떨어진다. 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정보를 소비하고 공유한다.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는 아랍의 봄이었다.

◆조영호(서강대 교수) - 누가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700만 명의 한국인들이 참여한 촛불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점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촛불시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시위와는 다르다.
첫째, 촛불시위의 원인은 동유럽의 선거 혁명, 경제 위기로 인한 아랍의 봄 반란, 신자유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시위와는 다르다. 촛불시위는 선거, 경기 침체 또는 정체성과 직접 관련이 없었다. 둘째, 촛불시위는 동유럽과 중동의 대중 봉기와는 달리 국제적으로 독립적이었다. 반면, 촛불시위 역시 정권을 바꾸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의 시위와 유사하다.
촛불시위와 관련된 자료를 활용해 행위자 중심 이론을 검증함으로써 최근에 일어난 민주적 시위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촛불시위의 많은 참가자가 수도권의 젊고 교육받은 중산층 시민이자 야당 지지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우선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헌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또 참여자들은 자유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우선시했다. 그들은 급진적 사회 변혁을 요구하지도, 탈물질적 가치를 보여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촛불시위에 참여한 그들의 동기는 변혁적이고 포스트 모던적이기 보다는 민주적으로 방어적이고 개혁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동기는 계급적 위치에 따라 달랐다. 이러한 결과는 행위자 중심의 민주화 이론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민주주의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존 이시야마(John Ishiyama, 미국 북 텍사스 대학 교수 University of North Texas) - 아래로부터 불거지는 불만의 소리? : 멕시코와 러시아의 선거권위주의 정권의 변화
러시아와 멕시코는 연방체제와 연방주의를 채택하면서 공통으로 지역 수준에서는 야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국가 차원에서는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낼 잠재력이 거의 없다. 지방은 지역 지도자의 통제 하에 놓여 있다. 이 같은 원격 영역은 러시아의 경우 극동과 동부 시베리아에서 두드러지며 야당에 지역 선거에서 승리할 기회를 제공한다.
멕시코 야당인 국민행동당은 보수적 가톨릭 정당에서 세속적·반부패적·친민주적 정당으로 재창조됐고, 그 결과 이름뿐인 야당에서 진정한 야당으로 변모하여 국가권력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연방공산당은 1993년 공산당 금지령 해제 이후 설립된 정당으로서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이 지배하는 전국 차원의 경쟁정치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야당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연방공산당은 새로운 종류의 공산주의 기업가로 떠오른 그루디닌(Grudinin)을 지도자로 내세워 반부패적 관리능력을 입증하는 한편, 여당의 연금퇴직 연령 상향정책에 맞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고 유권자들에게 그 대안을 제시하며 선거권위주의 정권에 도전할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야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덧붙여, 1960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한 한국의 2·28항의시위와 같은 대중시위는 선거권위주의 정권을 극복할 잠재적인 대안으로 주목할 수 있다.

◆김헌준(고려대 교수) - 한국의 이행기 정의: 성취, 도전, 그리고 전망
이 연구에서는 먼저 미군정기, 한국전쟁기, 권위주의 정권기로 나누어 인권침해 사례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이행기 정의의 성취를 해석적, 분배적, 교정적, 응보적 요소 등 4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해석하면서 성취와 도전 그리고 전망의 차원에서 논의했다.
과거의 억압적인 정권이 행한 만행에 대응하기 위해 일어난 정치과정으로서 '이행기 정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하며, 정책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상생과 공존, 통합과 치유의 미래지향적인 목적을 지향한다. 또한 이행기 정의는 독재와 파시즘 정권이 민주주의로 변하는 정치적 이행을 거치고, 민주화 이후 책임 있는 국가기관에 의해 결의되고 운영돼야 하며, 과거의 인권 침해를 해결하는 데 징벌, 재해석, 재분배, 교정의 방법 중 하나 이상을 포함해야 하는 세 가지 선제 조건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행기 정의는 억울한 희생자와 유족의 불만을 해소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인권의식과 국가책임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이고 있다. 한국의 이행기 정의는 세계적 이행기 정의의 흐름 안에 존재하며 보편적 인권과 세계평화의 가치를 실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은 국내외 여러 사회운동 및 해외의 이행기 정의 추구 활동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하고 있다.

◆김남규(고려대 교수)·알렉스 크뢰거(Alex M. Kroeger, 미국 텍사스 주립대 교수 Texas State Uni.) - 반정권 시위와 민주화
연구는 ▷반정권 시위가 독재정권의 붕괴와 민주주의에로의 전환에 미치는 영향의 검증 ▷반정권 시위로부터 민주적 전환으로 가는 네 가지 경로의 검증 ▷두 변수를 연결하는 개입 메커니즘의 검증 등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반정권 시위는 권위주의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높이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와 독재로의 전환 가능성을 높인다. 연구 결과, 비폭력 반정권 시위는 체계적으로 민주적 전환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폭력적 반체제 시위는 독재적 전환가능성을 높인다.
반정권 시위가 민주적 전환에 영향을 주는 경로로는 첫째, 권위주의 정권을 직접 몰아내어 민주적 개혁에 성공할 수 있는 경로이다. 반정권 시위가 정권 붕괴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비폭력 반정권 시위만이 민주적 전환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본다. 둘째, 정권의 생존을 위협함으로써 지배 엘리트들에게 민주적 개혁에 대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정권 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분열을 낳아 민주개혁의 기회를 창출한다. 넷째, 기존 정권 내에서 지도력 변화를 촉발하여 새 지도자의 민주적 양보를 압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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