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 '거목'으로 평가받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여만이다.
삼성은 25일 오전 이 회장의 별세를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 뜻에 따라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부인 홍라희 여사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3남 5녀 가운데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장남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과 차남 고 이창희 새한미디어 회장이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면서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1993년 독일 프랑크루프트에 임원진을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신경영선언'을 한 것이 여전히 회자된다.
이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크게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소니를 제치고 세계 TV시장 1위를 차지했고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은 2012년 390조원대로 성장했다. 고용 인원도 10만여명에서 42만5천여명으로 늘었다.
기업인으로서는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그늘도 있었다.
2007년 삼성그룹 법무팀장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으며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다. 이 때문에 2008년 경영 1선에서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를 발표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와 체육계 건의로 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해 조직 재정비와 삼성의 새로운 도약에 힘썼다.

이건희 회장은 대구와도 인연이 깊다.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나 3살 때까지 머물렀다.
대구와 인연은 희비가 엇갈린다.
1990년대 대구로 예상되던 삼성자동차 부지가 부산으로 가고, 이후 '꿩 대신 닭'으로 받은 삼성상용차가 2000년 파산하자 지역 내 '반삼성' 정서가 이는 등 삼성과 대구 관계는 소원해지기도 했다.
이후 관계는 좋은 면이 부각된다. 2003년에는 삼성그룹이 500억원을 출연해 1천500석 규모의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지어 기부채납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 때는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자격으로 대구를 방문해 이틀간 지역에서 일정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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