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신통하다. 10월 23일, 서리가 내린다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節氣), 상강(霜降)이 되니 경기 북부와 강원 산간 지역의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고 해당 지역엔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일까? 지난주 금요일 저녁 길거리는 한산했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날씨와 기후는 그 지역의 자연 식생 분포를 결정하고 문화의 지역 차를 발생시키는 기본 요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이탈리아는 여름에 특히 고온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철 강렬한 태양이 뜨겁게 달군 열기를 식히기 위한 분수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사람들은 오후에 '시에스타'(la siesta)라고 불리는 낮잠을 즐기며, 시원한 실내 환경을 위해 대리석과 유리로 된 건축, 제품이 많다. 이처럼 지역의 기후와 풍토는 지역의 전통을 형성하고 고유한 디자인적 특성(기질과 성향)을 만든다.
지역의 환경과 기질을 담은 디자인은 핀란드의 디자인 거장 '알바 알토'(Alvar Aalto)를 생각하게 한다. 그의 디자인에는 핀란드의 풍토와 전통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화려한 색채와 금속 사용이 유행했던 당시 디자인 추세를 거부하고 핀란드의 풍부한 나무 자원에 주목하고 곡목 합판 기술을 개발해 핀란드의 호수와 산의 곡선에 영감을 받은 핀란드의 자연을 닮아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그러한 그의 대표 디자인 중 하나가 아르텍 스툴 60(Artek Stool 60)이다. 이 디자인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 아르텍(Artek)사에 의해 1933년 처음 생산된 후, 지금까지 1억 개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자작나무를 재료로 원형 상판에 세 개의 다리로 구성된 매우 간단한 구조와 형상의 이 의자의 특징은 다리에 있다. 'L자형'으로 굽은, 상판으로 연결되는 이 다리 덕분에 하중을 더욱 견고하게 지탱할 수 있고 높이 쌓아 보관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높은 공간 효율성을 갖는다.
지역의 풍토와 기질을 담은 디자인은 문화 다양성의 기초 자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태어난 나라가 있는 디자인, 일종의 모국어를 가지고 있는 디자인은 지속될 수 있을까? 지난 추석 연휴, 봄의 전령사인 벚나무가 꽃을 피웠고, 전국 곳곳에서 이와 같은 이상 개화 현상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54일의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와 연이은 태풍 때문에 평년보다 낮은 기온의 지속으로 나무가 계절을 착각한 것이라 한다.
가을의 끝자락에 철 모르고 핀 가을 벚꽃의 향연에 이상기후를 우려하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2020년 1월 평균기온은 10년 전보다 2.78℃ 올랐다. 기후 위기는 계절의 전환점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지구온난화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각 지역의 식생, 풍토적 고유성은 유지될 수 있을까? 지금 인류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문명을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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