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과 함께 살아왔고, 일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우리 삶과 일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도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 일은 단지 인간의 생물학적 필요에 그치지 않고, 올바른 삶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최근 택배 노동자의 잇따른 죽음은 충격이다. 퇴근도 하지 못하고 31시간이나 일하다 쓰러진 택배 노동자. 생존을 위한 그들의 노동은 우리 모두의 고통이다. 일할 권리,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게 일하고, 일이 행복이 되는 세계를 그려볼 수 없을까?
팀 던럽은 '노동 없는 미래'에서 그런 세계를 그려본다. '우리들이 가진 에너지와 재능을 소득을 올리거나 이익을 내는 데 사용하지 않고, 개인적 만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세상은 없을까. 급여나 각종 수당을 못 받게 될까, 일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워 새벽같이 출근하고 뼈 빠지게 일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세상은 없을까.' 그러면서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상을 통해 예술과 교육에 많은 시간을 쏟고, 뭔가를 배우는 데 큰 성취감을 느끼며 사는 사회를 그려본다. 그렇지만 그는 일과 삶의 가치에 대한 우리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일로부터 해방은 요원함을 피력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일이 되었다. 일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사회적 신분을 가르는 수단이고, 은퇴 후 안락한 삶을 보증하는 증서가 되었다.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하던 단순 노동은 기계나 로봇이 한다. 곧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 해도 우리는 기계가 우리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불안하고,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두려워한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업혁명은 인류사의 대전환이었다. 농업혁명은 기후변화에 관계없이 안정된 생활은 물론 인류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고 한다. 농업혁명은 잉여농산물을 저장하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인류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인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최근 통계에 따르면 약 8억3천900만 명이 가난에 허덕이고 34억 명의 노동인구 가운데 2억400만 명이 실직 상태이다.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극소수는 행복할지 몰라도 많은 사람이 불행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과 그 가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깊이 다가온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 일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에서 일할 노동자를 구했다. 그는 일꾼들에게 하루에 한 데나리온씩을 약속하며 포도원 일을 시켰다. 포도원 주인이 제3시(오전 9시)에 인력시장에 나가니 일을 찾는 사람이 있어 포도원으로 보냈다. 주인이 제6시(낮 12시)와 제9시(오후 3시)에도 인력시장에 나갔는데 여전히 일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제11시(오후 5시)에도 나갔다. 아직도 인력시장에는 일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포도원 주인은 그들을 불러 일을 시켰다.
유대인의 노동 시간(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 끝났다. 주인은 하루 일과가 끝난 노동자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일당을 지불했다. 그런데 뒤끝이 좋지 않았다. 포도원에 먼저 와서 일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원성이 자자했다. 급기야 예수님은 불공정한 업주가 되셨다. 과연 그럴까?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노동의 가치로, 노동을 생산성과 성취로 평가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수님은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 예수님은 일의 생산성이나 가치에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생존할 것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신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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