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 2위 경제 대국으로 통상 갈등을 빚던 미국과 중국이 세계 무역분쟁을 조정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다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공식 지지하고 나선 반면, 중국은 사실상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 대해 지지를 시사하면서 미·중 간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조짐이다.
미국 통상정책을 지휘하는 백악관 직속 기관인 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차기 사무총장으로 유 본부장을 공식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WTO는 매우 어려운 시기로 중대한 개혁이 매우 필요하다"면서 "25년간 다자간 관세협상이 없었고 분쟁해결 체계가 통제불능"이라며 유 본부장이 개혁의 적임자라고 지적했다.
WTO가 선호도 조사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나이지리아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추천한 것과는 대조적이며 중국도 사실상 나이지리아 후보 지지를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아프리카에 거액을 투자하면서 공을 들여왔고, 아프리카 출신 지도자라면 개발과 관련한 무역 의제에 더 중점을 둘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비록 미국 국적도 보유했지만,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본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미중이 각기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서면서 WTO 사무총장 선임이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WTO는 컨센서스 도출 과정을 거쳐 회원국이 합의한 후보를 다음 달 9일 열리는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차기 사무총장으로 추대한다는 방침이다. 외신들은 만약 9일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회원국별 투표가 사상 최초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간 WTO가 중국에 편향적이라서 중국의 불공정한 통상관행을 제지하지 못하며 WTO가 미국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고율 관세를 치고받는 무역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은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 통상질서를 규율해온 체계에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슈퍼파워 미국이 일방주의를 관철하고 있다며 WTO와 같은 다자주의 체계를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총장 선임은 전방위 갈등을 빚어온 미국과 중국이 통상분야에서 적법성과 정당성을 다투는 성격도 띠게 됐다. 미국은 WTO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가 무역 규정에 맞지 않다고 판정한 것과 관련해 항소하기도 했다. WTO는 지난 9월 약 2천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무역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판정한 바 있다.
중국은 이에 반발하는 입장이다. 빅터 가오 국제관계 전문가 겸 전 덩샤오핑(鄧小平) 통역은 SCMP에 "미국은 WTO와 같은 국제기구보다 상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지속해서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외신들은 미국의 일방주의가 다시 발동했다는 해석을 쏟아냈다. 미국의 뒤늦은 이의 제기에 유 본부장을 지지하던 국가들마저 반감을 드러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영국 BBC방송은 "미국이 아프리카 첫 WTO 수장이 되려는 오콘조이웨알라를 막으려고 시도한다"면서 "미국이 유 본부장을 계속 지지한다고 하면서 4개월간 진행된 차기 WTO 사무총장 선출 절차가 장애물에 부딪혔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WTO 사무총장 선두주자를 거부했다"면서 "160여개 회원국을 무시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확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미국이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하길 계속 거부하면 결국 투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의 뜻에 반해 지명된 사무총장은 힘든 임기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상소기구 위원선임을 막아 국제무역 중재자로서 WTO 역할을 마비시킨 미국이 이번엔 몇 주 또는 몇 달간의 '리더십 공백'을 위협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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