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선시대의 혼밥족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한국 사람들은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을 유달리 좋아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조상들은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에 가까웠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각자 1인 밥상을 차려 먹었고 식사 중엔 말을 삼갔다. 일제강점기 주막 풍경을 묘사한 글을 보더라도 식객들은 밥상과 밥그릇, 국그릇을 따로 차려 놓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주막에서 손님들이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왁자지껄 친교를 다지는 풍경은 없었다.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6·25 이후부터다.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식구에게 독상을 차려줄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밥상을 매번 따로 차리는 것은 중노동인데 이 부담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자는 인권 운동도 여기에 한몫을 했다.

서구 문화의 영향과 산업화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식사는 커뮤니케이션의 지위를 획득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식사를 비즈니스에 잘 활용한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의 식사는 꽉 막힌 정치적 갈등을 풀어 나가는 고도의 정치 기술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혼밥 논란에 휩싸였다. 28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통령 일정을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5월~올 9월 문 대통령의 식사 회동 횟수는 209회에 그쳤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외부 인사와 식사 회동을 한 셈이다. 내부 일정 소화 비중은 78%나 됐다.

대통령의 혼밥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2월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혼밥하시우?"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된 바 있다. 물론 문 대통령이 혼자 밥을 먹기보다는 약식 회의를 겸해 참모들과 식사를 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참모들과 밥을 먹어 봤자 확증 편향만 강해질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불통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이유 중 하나가 유별난 혼밥 사랑이었다는 점을 문 대통령은 잊어버린 것일까. 대통령이 혼밥을 즐기다 보면 민심과 동떨어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직은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반드시 소통해야 하는 자리다. 더구나 지금은 혼자 밥 먹는 게 예법인 조선시대도 아니다. 대통령의 '식사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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