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천400억 원.
지난해 보이스피싱의 피해액이다. 어마어마하다. 저 숫자 속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이 있을까. 누군가를 믿었던 마음이 새까만 울분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것이다.
제주지방경찰청의 의뢰는 이 숫자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숫자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그 숫자가 말하고 싶은 시민들의 먹먹함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되어 보았다. 먼저 나는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지금 급하게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나의 와이프가 수술을 못 받는다고. 생명이 위험하다고. 그렇게 죽을거라고. 이런 긴급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또 이런 전화를 받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계좌를 범죄에 이용해 모든 돈을 출금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돈을 검찰로 보내야한다고 말이다. 머리는 생각이 가득차고 눈앞은 한 밤 중이 되었을 것이다.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니 나는 이미 은행에 와 있었다. 허겁지겁 현금자동입출금기(ATM)기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곳이었다.
보이스피싱 예방 광고를 설치할 곳은 바로 은행이었다. 우리에겐 가장 단순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손이 떨리고 눈이 떨리는 사람에게 복잡한 이미지는 금물이었다. 말 그대로 보이스피싱을 단순하게 시각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피싱을 표현하기 위해 낚시줄을 가져왔다. 예상치도 못하게 이 낚시줄은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돈을 낚는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그 사람이 정말 들어야할 음성이 적혀 있다.
'보이스피싱은 의외의 곳에서 당합니다'
뭔가 불완전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불완전한 정신의 사람이 타겟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장에 의외성을 뒀다. 그 사람에겐 지금 당장의 하늘이 노랄테니 천장에 불완전한 이미지를 뒀다.
'뭐야? 여기 공사중이야? 아직 천장 마감도 안한거야?'
이런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하지만 사실 이 메시지는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목소리에 송금하지 말라고. 당신은 속은 거라고 말이다.
이번 광고에서 우리가 쓴 카피는 진부하다. 누구나 쉽게 떠올릴 법한 문장이다. 하지만 이런 진부한 말도 나이야가라 폭포에서 하느냐, 자유의 여신상의 오른 손바닥 위에서 하느냐에 따라 임팩트가 달라진다.
광고인도 진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상할 수 있는 말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하면 용서된다. 100점짜리 광고는 못 되더라도 합격점은 받을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려주고 싶은 소비자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다가가고 싶은 고객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사랑해"처럼 진부한 말이어도 상관없다. 그 말을 어디에서 할 것인지 고민해보라. 장소에 따라 고객의 표정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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