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머리 나쁜 양들은 줄곧 이렇게 외쳐 댄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돼지 나폴레옹이 불러준 대로 내뱉는 것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외쳐 대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네 다리는 무조건 좋고 두 다리는 무조건 나쁘게 보이게 된다.
'검찰개혁'이라는 말도 그런 선동구로 전락해 버렸다. 대한농장의 양들도 주야장천 외쳐 댄다. "우리는 좋고, 검찰은 나쁘다." 거기에 토라도 달았다가는 무한 반복되는 또 다른 선동구의 폭격을 받게 된다. "토착 왜구, 토착 왜구, 토착 왜구, 토착 왜구." 가끔은 이 양들의 두개골에 뇌라는 게 담겨 있는지 진지하게 의심한다.
선동구를 끝없이 되뇌다 보면 이윽고 검찰 조직 전체가 범죄 조직으로 보이기 마련. 그리하여 '검찰=악마'라는 황당한 명제가 그들의 머릿속에 아예 '공리'로 자리 잡는다. 공리의 정의는 '증명 없이 참으로 통하는 명제'. 이 절대명제를 그들은 모든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검찰=악마이니 검찰의 모든 행위가 다 사악해 보일 수밖에.
표창장을 위조해도 검찰의 잘못이요, 증거를 인멸해도 검찰의 잘못이요, 사찰을 무마해도 검찰의 잘못이다. 나라에서 보조금을 부정 수령해도 검찰의 잘못이요, 치매 걸린 위안부 할머니에게 사기를 쳐도 검찰의 잘못이요, 업무상 배임과 횡령을 저질러도 검찰의 잘못이다. 그 모두가 "검찰이 창작한 죄"(진혜원)가 된다.
물론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위반해도 검찰 잘못이다. 정정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국회를 기만하고 인격을 말살하는 검찰의 권력 행사에 대해 300명의 동료 의원을 대신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검찰=악마이니 범죄의 피의자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걸어가는 선구자 행세까지 하는 것이다.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말이다. "인신이 구속된 상태에서 그 어떠한 방어권도 행사할 수 없으며 검찰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끌려갈 수밖에 없음을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검언 유착의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1조6천억원 금융사기의 피의자가 개혁의 투사가 된 것도 '검찰=악마'라는 공리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터졌다. 수사 인력을 강화해도 시원찮을 판에 문재인 정부는 외려 금융 범죄를 전문으로 하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시켜 버렸다. 인사랍시고 열심히 수사하던 검사들 다른 데로 보내 놓고는 엉뚱하게 서울남부지검장과 검찰총장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이 모두가 그들이 수사를 덮은 탓이란다.
법무부 장관은 범죄자와 손잡고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금융 비리 사건을 "검사 게이트"로 둔갑시키느라 바쁘다. 김봉현이 주장하는 검사 술 접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설사 그런 일이 있었어도 검사 한두 명의 개인적 일탈이 검찰 전체가 썩었다고 말할 근거는 못 된다. 일반화를 하려면 최소한 청와대 수준은 돼야 한다.
그동안 비리로 기소된 청와대 출신들을 보자. 조국 민정수석, 한병도 정무수석, 전병헌 정무수석, 신미숙 인사비서관, 김종천 의전비서관, 송인배 정무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최강욱 공직비서관. 비록 청와대 재직 시절의 일은 아니지만 윤건영 국정상황실장도 검찰 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뿐인가? 라임 사건으로 김모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4년 형을 받았고, 옵티머스 사건으로 이모 민정비서실 행정관과 익명의 민정비서실 수사관이 조사를 받고 있다. 수석부터 비서관, 행정관에서 수사관까지 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조직 전체가 썩었다는 일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라스 사태'와 관련해 여권 인사들의 이름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래도 끄떡없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지저분함을 대중의 머리에서 싹 지워주는 마법의 주문이 있으니까. 그것은 바로 '검찰개혁'. 하늘에서 내리는 함박눈처럼 이 주문은 정권과 사기꾼들의 비리를 하얗게 덮어준다. 이 시간에도 양들은 요란하게 울어댄다. "우리는 좋고오오오, 검찰은 나빠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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