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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경의 과학둘레] 거울과 나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거울을 일 년 동안 안 보고 산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외국에서 일 년을 머문다는 건 최소한의 물건만을 구비하고 사는 데 따른 불편함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오래전 타국에서 머물 때 사는 곳에 큰 거울이 없어 얼굴만 비추는 작은 거울로 일 년을 보냈다. 거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낸 결과는 나도 모르게 훌쩍 불어난 체중이었다.

거울은 유리로 만든다. 유리의 한 면을 은이나 알루미늄으로 얇게 입히면 빛이 유리를 투과할 수 없어 나를 지나친 빛은 거울에 반사되고 반사된 빛은 다시 나의 눈으로 들어와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같은 거리에 내가 복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울 속 나의 형상은 좌우가 뒤바뀐 허상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거울이 없다면 절대로 알 수 없을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자기를 본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살려 자아를 찾는 일인 듯싶다. 세계적인 뇌신경 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에게 거울을 사용해 감각을 회복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신체의 일부가 없어지면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의 피드백 순환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통증에 의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이때 만일 절단된 한쪽 팔을 뒤로 한 채 정상적인 팔을 거울에 비춰 양쪽에 팔이 있는 듯한 시각적 착각을 주면 없어진 손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거울 보기 훈련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던 자신의 신체에 대해 허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통제력을 갖는 효과가 있음을 알려준다.

거울이 없던 까마득히 오랜 시절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들 또한 잔잔한 물 위에 언뜻언뜻 반영되는 모습을 보고 크나큰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난 뒤엔 반짝이는 돌을 매끈하게 갈고 그 후론 청동을 녹이고 판판하게 두드려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때론 백설공주의 왕비처럼 거울에 매몰되어 외면에 집착하는 역기능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거울은 자신을 알게 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만들어준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듣고 상상함으로써 자신을 알게 된다고 한다. 이는 거울의 속성과도 닮았다. 거울은 물체를 반영하는 특성 외에 빛을 투과하는 유리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거울을 만들 때 금속 막을 더욱 얇게 유리에 입히면 빛을 모두 반사하는 대신 반만 반사하고 반은 투과시킨다. 이때 거울은 양쪽의 밝기 차이에 따라 한 면은 거울이 되고 다른 면은 유리가 된다.

영화를 보면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취조실 장면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거울이 그런 종류다. 취조실 안팎에 조도 차이를 주면 용의자와 수사관은 억울한 누명을 쓴 선량한 시민과 범행을 감추려는 수상한 사람의 시각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자신과 타자의 관점을 상대적인 빛의 밝기에 따라 넘나드는 이러한 거울은 나와 타인의 시각이 뒤바뀌고 연결되는 자아의 경계와도 닮았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우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 또한 거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우주로 쏘아 올리는 우주망원경은 거울을 사용해 까무룩한 별빛을 반사하고 한 점에 모은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내년 초 발사 예정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18개의 육각형 거울을 벌집 모양으로 붙여 지름 6.4m의 크기로 만든 커다란 거울을 주경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지상 150만㎞ 상공에서 우주 탄생 초기의 빛부터 은하와 별의 형성, 태양계의 진화 과정과 생명체가 살고 있을 외계 행성의 탐지까지 감춰진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건 그것의 과거를 보는 것이다. 1초에 30만㎞를 달리는 빛이 눈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이미 지나간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비추어 본다는 건 되돌아본다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걸 보면 자신을 비추어보는 것은 137억 년의 비밀을 간직한 우주의 빛을 보는 일만큼 지난한 일인 듯싶다.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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