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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문(文)의 정치 재난, 그래도 교훈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재난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으로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흥미롭게도 영어에서 말하는 재난(disaster)은 '별이 벗어나다' 또는 '별이 사라지다'라는 뜻이라 한다. 별을 보고 갈 길을 찾던 옛 시절, 하늘의 별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늘 보이던 별이 제자리를 벗어나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때였다. 그러니 뜻밖의 일로 봤음이 틀림없다. 옛 사람들에게는 재앙이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일찍부터 하늘의 별자리에 관심을 두었다. 별자리와 관련된 현상을 두고 나라와 임금에 대한 길흉(吉凶)의 조짐으로 보고, 이에 대해 점을 쳤고 점괘에 따라 정책을 바꾸는 등의 잣대로 삼기도 했다. 신라가 첨성대를 세워 국가에서 하늘과 별자리를 관찰하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구려에 유래를 둔 천문도로 1천467개의 별자리를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 까닭도 같았을 법하다.

별자리의 비정상처럼 바람과 태풍, 지진과 화재, 눈과 비 같은 자연적 현상도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나면 재난일 수밖에 없다. 사람과 동식물에까지 엄청난 피해를 주고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를 두려워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나서는 까닭이다. 또한 이를 잊지 않고 다음에는 비슷한 재난이 덮칠 때 뒷사람의 교훈을 위해 필요한 처방과 자료를 남긴 사연이다.

이런 재난이 정치라고 어찌 없으랴. 특히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일이 너무 흔한 오늘의 망가진 한국은 '정치 재난'의 후유증이라 볼 만하다. 2020년 한국 정치 모습을, 2017년 선(善)한 인상의 지도자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인사와 정책, 예산 등에서 일상화된 편파적 행정 독주가 그렇고, 다수를 앞세워 합의와 협치가 실종된 입법의 독주, 정권과 특정 세력 편드는 사법 독주 또한 그렇다.

이는 현재 대통령이 앞서고 여당과 법무부의 수장이 가세, 강도를 더하는 모양의 삼박자이다. 지금껏 잘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리라는 결기의 옛 각오는 출범 이후 갈수록 옅어져 다시 되돌아가기에 너무 멀다. 입법 독주의 여당 대표는 문 대통령이 과거 약속한 당헌 규정조차 바꿔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당초 공약과 달리 무공천 대신 후보를 낼 꼼수에 여념이 없다. 법무부 수장은 엄정 중립의 법치(法治) 수호 깃발은 팽개치고 법치 허물기에 밤낮이 없고 검사들과 때 아닌 싸움만 한창이다.

그러나 지금 펼쳐지는, 예상하지 못한 정치 재난의 후유증에 따른 교훈 역시 없을 수 없다. 재난은 큰 피해도 주지만 태풍이 수자원의 공급원도 되고, 바다 생태계에 도움되는 효과처럼 정치 재난의 장점도 있다. 문 정부 들어 지금 겪고 있는 정치 재난은 지난 정부의 보수 세력이 국정 농단을 막지 못해 진보 세력에 실권(失權)했듯이, 문 정부를 잇는 정치 세력에게 그들이 가지 말아야 할 길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미리 경계할 것이 틀림없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함께 저지른 전철에서 배우는 교훈은 분명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일 것이다. 지금 같은 정치 재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도 같다. 군사정부에서 벗어난 문민정부가 사회 전반의 민주화 꽃을 피운 것처럼 뒷세대는 앞선 선배들이 빠졌던 정치 재난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정치 문화를 이끌 수 있다. 마치 폭염 재난 대책에 앞선 대구의 행동이 나라의 폭염 산업 발전의 한 계기가 됐듯이, 문 정부에서 지금 벌어지는 정치 재난은 바로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면 한편으로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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