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실화 바탕으로 판타지 갈증 채워

SBS
SBS '날아라 개천용' 현장 사진. SBS 제공

최근 우리네 드라마에서 기자와 변호사는 그리 좋은 배역으로 등장하지 않는 편이다. 기자는 '기레기'라 불리고, 변호사는 법망을 빠져나가는 걸 돕는 권력의 하수인 정도로 그려져온 것. 하지만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 등장하는 변호사와 기자는 다르다.

◆어째서 정의는 돈이 안될까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보여줍시다."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박태용(권상우) 변호사는 박삼수(배성우)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제안한다. 고졸변호사로 재심에서 승소한 후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 어려운 사람들과 돈 안 되는 재심 소송만 밀려오는 통에 직원들마저 다 도망가버린 박태용 변호사. 그는 자신에게 어차피 돈 되는 일들을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차라리 재심 전문 변호사의 길을 받아들이겠다 마음 먹는다. 그러면서 '글빨' 좋은 박삼수 기자에게 자신이 재심 변론하는 이야기를 기사로 이슈화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러면 독지가들의 후원이 이어질 거라면서.

그런데 박삼수 기자 역시 회사 부탁으로 시장의 자서전을 쓰려 쫓아다니다가 경쟁 매체의 폭로로 하루아침에 기레기가 됐다. 기레기가 되어 결국 백수가 된 박삼수 기자나, 고졸변호사로 애초 돈 벌기는 글러먹은 박태용 변호사나 모두 손가락 빨아야 하는 처지지만, 이들은 결코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대신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보여주자고 일갈하고, 그런 제안을 한 박태용 변호사에게 박삼수 기자는 "돈이 정의인 세상에서 정의로 돈을 벌자"는 데 의기투합한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변호하고 묻힌 진실을 추적하는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대단한 정의나 사명감 같은 거창한 이유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들 역시 돈을 벌고 싶고 부유해지고 싶은 평범한 변호사이자 기자다. 하지만 그들의 스펙과 출신은 애초 그런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졸에 사법고시를 합격해 간신히 변호사가 된 박태용이 출신 학교의 연줄로 공고하게 얽혀있는 재계와 법조계의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갈 길은 애초부터 없다. 그래서 박태용은 본인은 원치 않았지만 돈이 되지 않고 또 승소 확률도 적어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된다. 마찬가지로 수천대학교를 재수를 해서 겨우 들어간 박삼수 기자 역시 고학력 네트워크로 되어있는 기자사회에서 자신의 유일한 경쟁력은 발로 더 많이 뛰는 것뿐이다. 그래서 사회부의 굵직한 사건들을 특종으로 잡아내지만, 권력자들의 비리를 캐내는 그에게 돈이 따를 리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이른바 자칭 '개천용'이다. 용이 되고 싶어 하지만 개천에 발을 담그고 있고 그 곳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들은 돈이 정의가 되고, 정의가 돈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걸 누구보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굴복하기보다는 거꾸로 정의가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한다.

SBS
SBS '날아라 개천용' 현장 사진. SBS 제공

◆그래서 이들의 정의는 돈이 됐을까

흥미로운 건 '날아라 개천용'이 그리고 있는 박태용 변호사와 박삼수 기자의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태용 변호사는 바로 우리에게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을 소재로 다뤘던 영화 '재심'의 실제 인물인 박준영 변호사가 모델이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어쩌다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이미지 관리를 통해 돈 되는 변호를 하려 노력해왔다는 이야기로 '인간미'를 보여줬던 변호사. 정의에 대한 사명감을 내세우지 않아 오히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이 바로 그다. 그래서 박준영 변호사의 이런 실제 모습과 "정의가 돈이 되는"을 외치는 박태용 변호사라는 캐릭터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박삼수 기자의 실제 모델은 바로 그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사건들을 보도함으로써 무고한 피해자들의 무죄와 재심을 이끌어낸 박상규 기자다. 탐사보도 매체인 셜록을 차린 박상규 기자는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보도했고 최근에는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갑질 영상 최초 보도, 동물권 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비밀 안락사 폭로,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피해자 보도 등을 했다. 또 '날아라 개천용'의 대본 작업을 직접 박상규 기자가 하기도 했다.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는 그들이 함께 했던 재심 사례를 통해 정의를 묻는 '지연된 정의'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래서 본래 이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제목은 '지연된 정의'였다가 '날아라 개천용'으로 바뀌었다. 좀 더 대중적인 접근을 위해 '개천용'이라는 서민 정서를 담은 단어를 활용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드라마 속 이들의 캐릭터들이 주창하듯 이들의 정의는 돈이 됐을까. 여러 방송에 출연했던 내용들을 통해 들여다보면, 물론 떵떵거리며 살아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럭저럭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을 정도의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 인물들이 여전히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은 '날아라 개천용'이라는 드라마의 판타지를 더욱 강력하게 해준다. 그건 희박하긴 해도 가능한 현실에서 따온 판타지니 말이다.

◆거침없는 전개, 혼신 담은 연기, 유쾌한 연출

보통 사건을 다루는 드라마는 작가의 치밀한 사전 취재가 관건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장르물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고, 그래서 그 영역에 대한 철저한 리얼리티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에 사전 취재는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을 두고 보면 '날아라 개천용'은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를 모티브로 하고 그들을 직접 제작에 참여시킨다는 기획만으로도 반 이상의 성공은 담보한 셈이다. 완벽한 사전검증과 현장의 실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담겨질 수 있으니 말이다.

중요해진 건 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 이야기를 어떻게 드라마라는 장르 속에 잘 녹여낼 것인가다. 다행스럽게도 곽정환 PD는 '미스 함무라비' 같은 작품을 통해 실제 문유석 판사를 작가로 함께 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기성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극적 장치들에는 약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는 리얼리티의 강점이 있다. 그리고 드라마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은 '추노'에서부터 '도망자 플랜B', '빠스껫볼' 등의 다양한 작품을 연출해온 곽정환 PD가 채워주는 방식이다.

'날아라 개천용'은 풍부한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그 전개 과정이 거침이 없다. 에둘러 애매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직진하는 스토리텔링은 시청자들이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낙천적인 두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권상우와 배성우의 합이 잘 맞는 연기와,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유쾌하고 발랄한 연출이 더해져 균형 잡힌 드라마가 탄생했다.

지금껏 기자나 변호사라고 하면 어딘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눈살부터 찌푸렸던 시청자들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이 본분을 힘겹게 지켜나가고 그러면서 얻게 되는 결코 작지 않은 승리들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게다. 특히 요즘처럼 진정한 기자와 변호사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시국에는 더더욱.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