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넘어오지 마"…25년 미개발 '뿔난' 땅주인 펜스 설치

사도(私道) 두고 주민 갈등…33년 전 도시계획 사업에 포함됐으나 일몰제로 무산
"25년간 도로로 쓰던 땅" vs "보상도 못 받는데…정당한 재산권 행사"

대구 서구 상리동에서 도시계획시설에 포함됐다가 개발이 무산된
대구 서구 상리동에서 도시계획시설에 포함됐다가 개발이 무산된 '사도(私道)'를 두고 지주와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주가 재산권 행사 목적으로 최근 펜스를 세워둔 모습. 이수현 기자

"25년간 사용해온 길을 갑자기 막아놨습니다. 이 길을 계속 이용하려면 길을 사라고 합니다."

25년 동안 통행용도로 활용되던 길이 별안간 창고 용도로 돌변한다면 어떨까. 그 길 없이 내 땅으로 갈 수 없다면. 대구 서구 상리동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도시계획시설에 포함됐다가 개발이 무산된 '사도(私道)'를 두고 지주와 주민 사이에 빚어진 갈등이다.

대구 서구 상리동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68) 씨는 최근 곤혹스러운 일을 겪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지난달 말 공장 입구에 펜스가 줄지어 세워지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펜스 뒤로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공간만 남겨두고 설치돼 있었다.

A씨는 "토지 소유주와 합의를 거쳐 지난 25년 동안 공장 앞 부지를 도로로 이용해왔는데 갑자기 이곳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펜스를 쳤다"며 "토지 소유주가 이 땅에 대해 보상받을 길이 없어졌다며 도로를 계속 사용하고 싶으면 부지를 사라고 나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현재의 공장 부지 역시 앞 도로를 이용하도록 해주겠다는 조건 하에 토지소유주로부터 매입했다는 게 A씨의 얘기다.

문제의 부지는 지난 1988년 대구 서구청의 도시계획시설 사업에 포함된 땅이었다. 당시 서구청은 상리동 229-6번지부터 255-4까지 총 60m 길이의 도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사업이 30년 넘게 미뤄지다 올 7월 일몰제 시행으로 도로개발계획에서 해제됐다.

도시계획시설 사업에 포함될 것을 기대했던 토지 소유주 B(69) 씨는 최근 재산권 행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1995년 땅을 매입해 개발을 기다려왔지만 도시계획 자체가 무산되면서 보상을 받을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B씨는 "도로개발이 이뤄질 거라 생각해 A씨 등에게 이 땅을 지난 25년간 도로로 이용하게 했다. 이제 이곳에 창고를 지을 생각으로 펜스를 쳤다"며 "관할 구청은 판에 박힌 답변만 하고 나 몰라라 한다. 개발이 무산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007년에도 이런 비슷한 갈등은 있었다. 대구 서구 평리6동 한 골목길의 토지 소유주가 갑자기 나타나 주민들에게 통행료를 요구했던 것이다. 애초 골목길 소유주는 한 건설사였지만 부도로 세금을 체납하자 서구청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골목길을 공매처리했다.

이후 골목길을 공매로 구입한 새로운 토지 소유주가 애꿎은 주민들에게 통행료 부담을 요구한 것이었다. 당시 토지 소유주 역시 주민들에게 통행료를 내기 싫으면 낙찰가의 두 배로 골목길을 매입하라며 골목길을 막아두기까지 했었다.

이에 대해 서구청 관계자는 "도로나 통행로로 사용되던 사유지를 토지 소유자가 재산권을 행사한다며 막더라도 구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평리동 골목길 통행료 논란이 일었을 때도 주민들이 땅을 일부 매입한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사안도 개인 간 민사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